인간의 고뇌란 건 광막한 우주에 떨어진 먼지 한 톨에 불과하다면.
영화 <애드 아스트라 Ad Astra> (2019)
감독 제임스 그레이
출연 브래드 피트
개봉 2019. 09. 19.
0. 스페이스 무비의 새로운 지평. 자연스레 <그래비티>가 겹쳐질 수 있지만, <그래비티>는 비교적 단순하고 평면적이고 직관적인 메시지 전달 방식을 취하고 있는 반면, <애드 아스트라>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어떤 상황을 두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다면多面을 헤집는 영화라는 생각.
0. 그 광활한 우주에는 공상이 아닌 고찰이 있었다. 광막한 깊이의 그곳에서 로이는 그에 비할 만큼 깊은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엄청난 분노를 파헤쳐보니 거기에는 상처와 고통만 있었고, 그걸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로이의 읊조림은 담담하지만, 그것의 속성은 조용한 절규에 가깝다. 그는 차라리 제 분노를 표출할 수 있었던 유인원의 처지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말로가 비참했을 지라도.
0. 가까스로 아버지를 마주한 로이는 묵묵히 지금의 그의 모습을 수용하고 설득한다. 다시 지구로 돌아가는 여정을 채비할 때, '없는 것만 찾았고 눈앞에 있는 것은 보지 못했'던 그의 아버지는 이번에도 역시 그 전철을 밟는다. 눈앞으로 다가온 지구로의 귀환 카드를 쥔 아들의 설득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실체 없는 믿음을 향해 떠나고자 한다. 아들에게서 떠나온 길고 길었던 시간 동안에도 눈앞에서 실현되지 못한, 환상에 가까운 믿음은 이제 집착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먼 우주. 거대한 해왕성의 둘레. 까맣고 깊기만 한 침묵의 바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로이와 아버지의 다툼 아닌 다툼으로 둘이 엉겨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풀샷이 잡힐 때, 나는 숨이 턱 막혀왔다. 그들을 비추는 카메라가 점점 멀어질수록, 까만 여백이 그들을 지워버릴 듯 확장되며 둘의 모습이 단지 각각의 점으로 수렴할 때, 온갖 절망과 괴로움과 고독이 해일처럼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그처럼 외로울 수가 없었다. 로이와 그의 아버지는 자신들이 당면한 화두를 세상의 전부로 여겼음에도, 결국 세상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의 존재와 고뇌는 우주를 부유하는 두 점의 먼지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0.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곳에 우주는 없었을런지 모르겠다. 우주와 그 우주에서의 사건과 시련들은, 다만 로이의 복잡한 내면이 시각화된 가상의 어떤 것인지도. 그 깊은 인간의 고뇌들이 고작 우주에서의 먼지 한 톨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