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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Feb 16. 2020

영화 <작은아씨들>, 시절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가고

나는 여기에 남아 지나간 파도를 바라 본다.






영화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2019)
감독 그레타 거윅
출연 시얼샤 로넌, 엠마 왓슨 외
개봉 2020. 02. 12.



0.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이 작품의 한 땀 한 땀을 모두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건 참 오랜만이다. 그렇게나 좋아하던 영화라는 매체에서 스스로 한 발 물러나 두 손을 들었던 일이 언제인가 싶게, 좋은 작품은 단번에 마음을 다시 휘어잡고야 만다. 무르고 여리고 보드랍지만 많은 순간 폭풍과도 같았던 시절에 대한 서사는 여지없이 나를 흔들고 말았다. 늘 비슷한 지점에서 속수무책인 내 마음이 싫지 않다고, 심지어 그런 때의 기분은 꽤 좋다는 생각을 한다. 어두운 상영관에서 그런 마음들에 휩싸이는 시간을 정말 사랑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과거형보단 현재형의 서술이 걸맞는가 보다. 그 시간들을, 정말, 사랑한다.




0. 나는 늘 지나온 시간과 지나간 뒷모습과 돌아갈 수 없게 놓아두고 온 지점을 연민하는 사람이어서, 조와 로리의 시절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들의 유년이 좋았다. 정말 다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신 오지 않겠다고 굉장한 작심이라도 한 듯 너무도 빛났던 그 시절은 애틋하고도 절절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미래의 시간이 너무 슬프거나 괴롭거나 아름답거나 기쁘거나 한 법이겠지. 그 감정의 파도에 올라타는 삶이란… ….




0. 세간의 기준으로는 누구보다 나약했지만 사실은 그 심지가 누구보다 단단했을 베니. 그녀는 뺨을 스치는 찬 바닷바람에도 담담한 얼굴로 조에게 말했다. "썰물 같은 거야. 천천히 떠나지만 막지는 못해." 그 선명한 발화는 영화의 인물들과 서사를 모두 꿰뚫고 스크린으로 뻗어나와 관객의 마음에까지 안착한다. 세상에 태어나 어떤 방식으로든 살고 있는 이라면 그 단순하지만 깊은 문장에 스며들지 않을 이는 없을 것이다. 시절은 아름답고 시간은 흐르고야 만다. 우리는 그렇게 떠밀리고 흘러 지금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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