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와 때,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선 열한 살
영화 <우리들 THE WORLD OF US> (2015)
감독 윤가은
출연 최수인, 설혜인 외
개봉 2016. 06. 16.
1.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만은 똑 떨어지게 설명할 수 없는,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뜬구름 같은 예민한 감정과 관계들. <우리들>은 그 모양들을 담담하면서도 세심한 솜씨로 정확히 캐치해냈다.
2. 세상에 막 적응하기 시작하는 나이, 초등학교 4학년. 열한 살. 천둥벌거숭이 티를 이제 막 벗고, 부모님이 어깨에 짊어진 짐과 형 동생에 대한 우애, 친구 간의 이해관계가 슬슬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나이다. 자신을 둘러싼 이해관계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눈으로 파악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의 속성을 정확히 꿰뚫기에 아직 부족한 나이는 관계에 있어 한껏 서투르고 어색하기만 하다. 영화는 선이와 지아 그리고 보라를 통해 그 예민한 심리를 날것의 상태로 보여준다. 그런 관계에 대한 담담한 시선이 가득했던 작품.
3. 열한살은 또한 '아직은' 순수한 나이. 순수와 때의 경계선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이랄까. 상대방은 내게 10만큼을 줬을 뿐인데 나는 100만큼을 선뜻 줄 수 있는, 순수하기 때문에 그런 계산없는 행동이 스스럼없이 되는 나이. '네가 좋으니까'라는 쉬운 공식으로 그런 행동들이 성립되는 나이. 하지만 관계 속에서 그런 마음이 한 번 튕기고 나면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지는 나이이기도 하다. 선이의 눈빛이 그랬다.
4. "너 나한테 화난 거 있어?" 그 시절 그 상황에서의 이 질문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난해하고도 미묘한 질문이다. 이 질문은 단순히 누가 누구에게 화가 나 있고 그것이 누구의 잘못인지를 떠나서, 너와 나라는 관계의 근원적 안위와 상태를 묻고 있는 질문이다.
또한 이 질문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너와 나의 관계는 더 이상 예전 같을 수 없다는 걸 안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그 관계를 조금이나마 되살려 보고 싶은 마음에, 상대방과 나 사이에 그어진 선에서 한발 물러서서 묻는 질문이다. 적어도 그 시절에 내가 깨우친 용법은 그랬다.
5. "걔가 또 너 때렸다며. 그럼 너도 다시 때렸어야지." 하는 선이의 말에 "그럼 언제 놀아?" 라고 반문하는 윤이. 어른인 나도 말문이 막혀버리는, 이 천연덕스러운 반문 앞에서 선이는 당황한 듯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때의 선이는 어른으로 다가가는 문턱에 한발 덜컥 들어선 것 같아 보였다.
0. 참 담담한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