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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Apr 02. 2020

유서를 쓰고 5만원을 넣어 두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모르고-





늦은 오후였다. 서랍 정리를 하다가 자질구레한 종이와 서류들 틈에서 멀끔한 흰 봉투를 발견했다. 반듯하게 닫힌 봉투는 무엇이 들었을지 넘겨짚을 수도 없이 열고 닫은 흔적이 없었다.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두 번 접힌 종이 한 장과 5만원 권 한 장이 나왔다. 지폐는 빳빳한 신권이었다. 누구에게 갚기로 작정하고 넣어 두었던 돈을 깜빡한 걸까? 혹은 빌려준 돈을 돌려받은 걸 그대로 넣어 뒀나? 궁금한 마음으로 종이를 펼쳤다. 간결하지도, 장황하지도 않은 글이 쓰여 있었다. 유서였다.



대략 5-6년쯤 묵은, 쓴 사람도 까맣게 잊었던 유서였다. 내용에 같이 넣어둔 현금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단지 당시의 심사心事를 추측할 수 있는 껄끄러운 문장이 쓰여 있을 뿐이었다. 이 유서를 발견할 사람에 대한 미안함 섞인 안타까움과, 유서를 쓰는 마음이 기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슬프지도 않다는 홀가분함과, 살면서 극복하려 했으나 결국 그러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짧게 쓰여 있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싶지만 그럼에도) 다행히 당면한 현실이 억울하다거나 분하거나 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그랬다면 다른 수를 내지, 자리에 앉아 유서랍시고 담담하게 써 내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목적과 결이 조금 다를 뿐이지, 그런 류의 글은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한 후로 몹시 자주 쓰고 있으니 사실 그 유서가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두 번쯤 읽고 찢어 쓰레기통에 넣고, 5만원은 지갑에 넣었다. 당시에 죽음을 다짐한 건지 각오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시절은 지나갔으니 더 이상 그때의 유서는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니, 유효하지 않다는 표현이 더 걸맞을 것 같다.



다만 생각하는 것은, 돈은 왜 넣었을까 그리고 왜 하필 5만원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요만큼도 짐작이 되지 않는다. '셀프 노잣돈'이라 넘겨짚어 봤으나 영 신통치 않다. 안 넣으면 안 넣고, 넣으려면 웬만큼은 넣어둘 것이지 5만원은 이도 저도 않은 금액이지 않은가. 혹여나 다시 그런 봉투를 마련하게 된다면 그때는, 후에 발견될 시기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당시로서는 좀 많다 싶을 만큼 넣어 두어야겠다. 아무래도 5만원은 좀 아쉽다. 마침 펭수 노트북 파우치가 사고 싶었는데 거기에나 보태야겠다. 5-6년 전의 나는, 유서에 넣어둔 돈을 펭수에게 갖다 바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주 잘 살아남아서 지나간 과거에 재미있는 어퍼컷을 날렸다는, 묘하게 통쾌한 생각이 든다. 역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삶이란.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아 눌러붙은 기억과 감정의 부스러기를 긁어내어, 비로소 내 이야기를 바깥에 터놓은 수필집 <나도 모르는 내 이야기>를 엮어 출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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