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정신승리
다중우주와 평행우주 이론을 알고 난 후, 나는 나의 행복을 다른 우주의 나에게 의탁했다. 마음이 고되어 허공을 바라볼 때마다, 이 우주 너머의 다른 우주- 그곳에서 살고 있을 또 다른 나는 행복할까 생각했다. 그 애가 행복하리라는 바람과, 그 애는 행복하리라는 믿음으로 이 우주의 나는 살고 있다.
언젠가 오빠에게 이 말을 한 적이 있다. 힘들 때 다른 우주의 행복한 나를 떠올리면 '그 애는 행복하니까 됐지, 뭐'하는 생각으로 지금의 고됨을 참을 수 있는 것 같다고. 하지만 전문 '팩폭러'이자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그 애가 불행하다면? 다른 우주의 네 처지가 꼭 더 나으리라는 보장은 없어. 여기의 네가 더 행복할 수도 있잖아. 지금."
산통 다 깨는 발언이었지만, 어쨌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으로 절반 쯤은 수긍했다. 그렇지. 사람 사는 일에, 더구나 이 광막하고도 드넓은 우주의 일에 '분명'과 '확실'과 '보장'이라는 개념이 가당키나 한가. 오빠의 말대로 지금 여기의 내가 최고로 행복한 나일 수도 있다. 중간쯤 행복할 수도 있고, 아무튼 '최악의 나'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저 너머 은하계를 촬영한 사진을 보며, 이 광활한 우주의 끝 너머 어딘가에는 이 지구의 나보다 행복한 내가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오늘을 산다. 그냥 고될 때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면 조금 편해진다. 조금은 견딜 수 있고 참을 수 있어진다. 저 우주의 행복한 나도 나야, 그러니까 나도 어줍잖게라도 행복하다고 할 수는 있는 거야, 라고 위안하면서.
*)이 글은 평행우주의 존재에 대한 이론적 개념이나 어떤 연구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철저한 문과인이자 이과 '알못' 글쓴이의 주관적 발상으로 쓰였음을 밝힙니다. 따라서 '평행우주와 바로 여기에 존재하는 인간은 그런 개념이 아니다'와 같은 의견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D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아 눌러붙은 기억과 감정의 부스러기를 긁어내어, 비로소 내 이야기를 바깥에 터놓은 수필집 <나도 모르는 내 이야기>를 엮어 출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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