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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May 10. 2020

나의 첫 책은 위선의 문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거실의 TV를 바꿨다. 희노애락과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던 가장의 삶 40년에 존경을 표하는, 아빠의 생신 선물이었다. 새 TV는 이전에 보던 것보다 세 배는 컸다. 아빠는 얼떨떨해 하시면서도 내심 흐뭇한 기색이셨다. 큰 TV의 첫 맛보기는 일부러 맞춰두었던 축구 채널이었다. 마침 손흥민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고, 관중석의 작은 얼굴까지 다 보이는 것 같다는 농담으로 기쁨을 표현하셨다.


그날 저녁 한 잔 잡숫고 들어와 내 방문을 똑똑 두드린 아빠는, 문을 한 뼘쯤 열고 물으셨다. "내가 잘못한 것이 많지?" 말끝이 흐렸다. 아빠는 내 책을 읽은 후 종종 그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엄마도 그랬다.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아도 될 순간에 "네가 고생이 많았는데 살기 바쁘다고 내가 그걸 몰라서…." 라거나 "네 책이 삶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 라고 말씀하시며 먼산을 보셨다.







나는 책을 냈다.

첫 책이자, 원고부터 편집 그리고 디자인에 인쇄까지 오롯이 나의 손으로 만든 독립출판물이었다.


어디 내보일 것도 아니면서 무시로 써 온 글이 쌓여갔고, 주위의 권유로부터 시작된 출간의 소망은 몇 년에 걸쳐 진득하게 달아올라 있을 때였다. 여기저기 흩날리는 글이 아닌 손에 잡히는 무엇으로서의 글에 대한 열망이 커졌고, 시간이 갈수록 마음 속에 오래 간직한 원고지들이 삭는 모양을 더 지켜볼 수 없었다.


쓰기를 외면할수록 생각은 얕아지고 감정은 거칠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허공에 끄적인 탓에 쓰자마자 사라지는 무엇이 될 지라도,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지라도 부족한 몇 자나마 써 보기로 했다. 말라 죽어가는 고목이 될 작정이 아니라면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책을 읽었으면서도 정작 '내 삶'을 쓰고 읽어본 적 없다는 사실이 더불어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출간을 결심했다. 평생 읽는 일만 열심히 해왔지, 출간이니 출판에 대한 일은 요만큼도 알지 못했던 나는 그야말로 무작정 책이라는 공든 탑 쌓는 일에 뛰어들었다.







나는 너무나도 작고 조용한 틈에 숨겨 두었어서 깊숙이 넣은 손을 긁히지 않고는 미처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꺼내어 엮었다. 작디 작아 보잘 것 없는 삶을 써 내려갔다. 누가 될 지 모르는 청자와 독자를 분명히 상정하지 않은 채, 고독한 독백을 다듬고 다만 써 내려갔다. 그 이야기들의 기쁨과 슬픔이 누구에게 얼마나 어떻게 가닿을 수 있을지 헤아릴 수 없었다. 다만 얼기설기 짜넣은 문장들의 틈에서, 나의 고독에 겹쳐지고 비춰진 독자 자신의 고독을 발견해 내고 더불어 곱씹을 수 있는 잠시의 시간을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랐다.


원고를 모으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간 시나브로 쌓인 글에서 실을 것과 싣지 못할 글을 골라내는 일도, 글 전체는 좋은데 어떤 부분이 미진하다면 덥석 덜어내어 새로 쓰는 일도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떠돌던 문장들이 지면에 새겨져 책의 형태로,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제법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다.


모든 과정의 중반쯤 되었을 때에서야 나는 부수적이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이 될 내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깊고 내밀했다. 오래 보고 지낸 친구는 커녕, 식구들도 차마 짐작하지 못했을 비참함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스스로의 비참과 참혹을 오래 보고 다듬고 또 돌아본 탓인지 그 이야기들은 적어도 내겐 처음과 같이 예리한 칼날이 아니었다. 하지만 곧 독자가 될 이들에게는 아닐 것이었다. 특히 나의 존재를 각별히 생각하시는 부모님께 이 책은 무거운 칼집이, 지면에 새겨진 문장들은 날카로운 칼날이 될 것이 뻔했다.


그리하여 나는 책의 <닫는 글>에 이렇게 썼다. 책을 엮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작정해 두었던 구절이었다.  「마치 입법될 법률안의 체계심사, 자구심사를 하는 마음가짐으로 글을 읽었습니다. (중략) 이 글을 읽게 될 누군가의 마음에 이쑤시개만큼의 상처라도 내게 될까 염려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부디 그 마음이 글을 잘 다듬어 내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실 그건 형편없는 변명에 불과하다는 걸 그때도 알았고, 지금도 안다. 염려하는 마음으로 글을 다듬었다지만, 진정 부모님을 염려했다면 쓰지 말았어야 할 문장들이 수두룩했다. 내 지난날의 그림자를 목격하실 부모님은 한동안 탄식할 밤을 보내시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나를 딱하고 가엾게 볼 이들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아주 연하고 무디게 연마한 문장들만 선별한 체를 하며 위장막을 씌운 것이었다. 나의 첫 책은, 위선의 문장으로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엄마는 나의 비참을 너무나 애처로워하셨고, 아빠는 기쁜 선물을 받으시고서도 편치 않아 하셨다. 나의 보잘 것 없는 욕심만으로 낸 책 때문에 기쁜 날에도 마냥 기뻐하시지 못하는가 싶어서, 보통날에도 보통날처럼 지내지 못하시는가 싶어 마음이 아팠다. 하나의 비참이 또 다른 참혹을 낳는구나, 싶은 생각에 괴롭기도 했다.


역시 나는 읽히는 기쁨보다, 읽히는 두려움이 큰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럼에도 한 번의 용기를 냈으니, 이제 두 번의 용기를 내어 다시 나아가야 한다고 마음을 다져본다. 비록 위선의 문장으로 시작된 책이지만 이 책을 발판 삼아 나아갈 일을 꿈꿔본다. 굽은 아빠의 등을, 한숨을 삼키는 엄마의 옆얼굴을 바라본다. 상처로 남은 첫 책의 아픔을 보듬을 다음의 책을, 다음다음의 책을 상상한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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