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정의는 거부된 정의와 마찬가지다."
영화 <라스트 풀 메저 The Last Full Measure>(2019)
감독 토드 로빈슨
출연 세바스찬 스탠, 사무엘 L. 잭슨 외
개봉 2020. 05. 20.
1966년의 베트남전 애블린 전투에서 전사한 공군 항공구조대원 '윌리엄 피첸바거'. 전멸의 위기에 놓인 육군 중대원들을 구조하기 위해 출동했던 그는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지옥 직전의 전투에서 탈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는 스스로 그 기회를 놓았다. 구조 대원으로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들의 탈출을 위해 최전선을 자처했고, 전사했다.
가까스로 생환한 전우들은 군인에게 있어 최고의 명예인 명예 훈장이 그에게 추서될 수 있도록 노력하지만, 그 노력은 십자 훈장에 그쳤다. (물론 십자 훈장의 명예 또한 낮지 않다.) 이후 32년간의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승급은 허락되지 않았다. 영화는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전우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평생 고통받으며 늙어가면서도 왜 그의 명예훈장 추서를 포기하지 않는지, 그는 통상적으로 명예훈장이 허락되는 의로운 행동을 했음에도 어째서 심사에 번번이 탈락했는지, 변호사 스콧 허프만의 시선에서 의문을 풀어간다.
훈장 수여를 심사하는 쪽에서는 항상 '나중에'라고 말했다. '윌리엄 피첸바거는 명예훈장을 자격이 충분하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아쉽게 탈락했으나 내년에는 될 것이다', 다시 '내년에는…', 그리고 다시 '다음에는…' 이라는 변명으로 32년이 흘렀다. 포기할 때도 되었건만 전우들은 끊임없이 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함께 항공구조대원으로 복무했던 전우 툴리는 다시금 그의 요청을 떨쳐내려는 스콧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지연된 정의는 거부된 정의와 마찬가지다."
단순한 미담으로 머무를 수 없는 정의를 보여주고도, 그 행동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조차 거부당한 윌리엄 피첸바거. 32년이 지나도록 인정받지 못한 그의 정의는 이대로 묵묵히 5년이 지나면, 또 10년이 지나면 인정받을 수 있을까? '훈장이 아니어도 모두가 그의 정의로운 용기를 안다'라는 말, '그러니 다음에는 될 것이다'라는 말뿐으로 그의 정의는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걸까? 아니, 툴리의 말대로 윌리엄의 정의는 명예훈장과 공식 문서라는 형태로 진정 실현될 때까지는 인정되지 못한- 거부된 것과 같은 셈이다. 말과 약속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흐려지기 마련이다. 전우들은 윌리엄의 정의가 잊히지 않고 세상에서 살아 숨 쉬길 바랐기에 훈장 추서를 포기하지 못했다.
윌리엄의 명예와 정의를 위해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 전우들의 원동력은 마음의 빚이었다. 혼자 살아남기도 벅찬 전쟁터에서 타인을 위해 자신을 포기한 윌리엄의 용기. 하나의 삶을 포기하고 다른 많은 삶을 살려낸 정의로운 선택에 대한 존경에서 우러난 마음의 빚. 마음의 빚, 그것은 대관절 무엇이기에 우리에게 포기할 수 없는 힘을 심어주는 걸까. 그리고 용기란, 또 어떤 힘이기에 이토록 경이롭게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일까.
어쩌면 용기란, 우리 인간이 가진 모든 것들의 근간이고 근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용기에서 우러난 정의가 이 세상을 느리게나마 바른 방향으로 끌어간다고 믿는다. 그 용기에 감화된 마음으로, 우리는 이 너그럽지 못한 시절을 살면서도 다시 세계를 믿어볼 수 있는 것이려니 생각한다.
번외) 인간 코스프레 하러 온 마블 유니버스의 닉 퓨리(빌리 타코다 역)와 윈터 솔저(스콧 허프만 역)의 투 샷을 보는 재미가 쫄-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