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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Jul 17. 2020

책 <심신 단련>, 경쾌한 글의 리듬 속 진중한 심지








<심신 단련>
이슬아
헤엄출판사
2019년 11월






굳이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도 그 이름의 유명세만으로 먼저 접하게 되는 작가들이 있는데 이슬아 작가는 그중 하나였고, 그에 대한 첫인상은 '남사스럽다'였다. 단지 그가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다니는 등의 자유로운 옷차림이나 행동, 사회에서 터부시 되는 것들을 서슴없이 말과 글의 주제로 삼는 특징 때문은 아니었다. 파편으로 접한 그의 말과 글, 그 안에서 자신에 대해 속속들이 드러내는 무엇과 그 방식은 확실히 그간 문학계의 메인스트림을 통해 접해온 것과는 달랐다.



그리하여 '그는 작가로든 독자로든 나와는 분명 다른 노선일 것이다'라는 명제가 마음속에 새겨졌다. 선입견이었다. 늘 그렇듯 선입견이란 깨지기 마련이고 이번에도 그랬다. <심신 단련>의 작고 귀엽고 소소하지만 품은 의미로는 결코 작지 않은 수필들을 통해서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진리가 어째서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체득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이슬아의 문장들은 기교나 미사여구와는 거리가 멀다. 어휘 선택이나 문장 구조가 단순한 편이고, 전체적인 글의 구성도 가벼운 편이다. 한마디로, 읽기 편하고 쉽다. 그럼에도 깊다.시원시원하고 경쾌한 글의 리듬 속에서 배경으로 깔리는 진중한 박자의 심지가 단단하다. 얼핏 스쳐지날 수 있는 일상의 에피소드에서 마음껏 자유와 고독과 영혼과 지혜를 끌어내어 매끄러운 글 꼭지 하나로 엮어낸다. 몇 편을 읽다 보면 이래서 <일간 이슬아> 연재가, 또 그를 뛰어넘어 단행본으로서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걸까, 하고 답을 찾게 된다.



하나의 사건도 굳이 비틀고 에둘러 돌아가 중량급重量級의 어설픈 글을 내놓곤 하는 나와는 많이 다른 글이었다. 처량한 장송곡과도 같은 내 글에 비하면, 그의 글은 아기자기한데 할 말 다 하는 인디밴드의 노래와도 같았다. 그 가볍지만 무게감 있는, 얕지만 깊은 글들을 한껏 부러워하며 <심신 단련>과 안녕했다. 다른 부러움을 찾아 이번엔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을 만나야겠다.














곽 선생님이 낮은 목소리로 읽어준 임의 글은 문장도 단어도 엉망진창으로 틀린 글이었는데 너무 외로운 이야기여서 나는 난데없이 터지려는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불쌍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었다. 그 애의 슬픔이 뿜어내는 광채에 놀란 것이었다. 혹시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가진 것보다 잃은 것이 더 중요한가. 어른이 되어 읽은 신형철 평론가의 문장처럼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 글쓰기일지도 몰랐다. 그날부터 나는 내 결핍을 샅샅이 찾아다녔다.나의 크고 작은 불행, 나의 처연함, 나의 어려움, 내가 받은 상처 따위를 이리 보고 저리 봤다. 그러고는 밤마다 기숙사 책상에 다리를 틀고 앉아 일기를 썼다. 자기 연민과 결핍에 도취된 일기들이었다.

(135쪽)




그런 바깥사람들을 기억하며 외출 준비를 한다. 이십 분 만에 간단하게 끝낸다. 챙기려던 것을 대부분 내려놓는다. 여러 전전긍긍을 집에 두고 현관을 나선다. 이런저런 역사를 품은 몸, 어리석고 지혜로운 이 몸을 믿으며 걷는다. 몸은 하루의 무수한 가능성들을 어떻게든 맞이하고 감당할 것이다.마찬가지로 그런 몸을 가진 누군가가 내 쪽으로 걸어오리란 걸 안다. 한참 같이 앉아 있다가 엉덩이를 툭툭 털고 다시 각자 집사람이 될 것도 안다.

(203쪽)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나쁜 일이 자신을 온통 뒤덮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나쁜 일이 나쁜 일로 끝나지 않도록 애썼다. 우리가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고 어떤 일에서든 고마운 점을 찾아내는 이들임을 기억했다. 사랑은 불행을 막지 못하지만 회복의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사랑은 마음에 탄력을 준다. 심신을 고무줄처럼 늘어나게도 하고 돌아오게도 한다.

내일의 침실에는 하마가 함께하지 않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하마가 내 옆에 있는 건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무서운 게 많아도 나는 점점 혼자 잘 자는 사람이 되어온 느낌이다. 그건 하마 덕분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동안의 침실에서 하마는 내 몸과 마음에 여러 용기를 심어주었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떠올리면 좋을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 용기로 나는 어떤 일에서 더 이상 물러서지 않는다. 미안하지 않으면 사과하지 않고 웃기지 않으면 웃지 않는다. 웃길 때 웃음을 참지 않듯 가슴이 아플 때 충분히 운다. 하마 눈에 비치 내 모습이 얼마나 나약하고도 강인했는지 까먹지 않는 한 쭉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서로를 놓치고 나서도 서로에게서 배운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309-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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