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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Aug 30. 2020

책 <죽은 자의 집 청소>,  이미 떠난 삶의 흔적-

그 짙은 외로움을 정리하는 일에 대하여.








<죽은 자의 집 청소>
김 완
김영사
2020년 5월






저자는 특수청소업자다. 가끔은 산 사람의 의뢰로 속칭 '쓰레기집'을 정리하는 일도 하지만, 대체로는 범죄와 죽음의 흔적을 정리하는 일에 투입된다. 상해와 살인으로 인해 엉망이 된 현장과 시신이 오래 방치된 공간을 청소한다. 온갖 가구와 바닥에 걸쳐 스며들고, 웅덩이가 되다시피 흐른 체액과 피를 닦아내고 고인이 남긴 것들을 정리한다.


자의든 타의든 이미 세상을 뜬 이들이 남긴 것들은 어쩐지 마음을 아리게 한다. 몇 줄 되지 않는 이력서, 생전 그의 취향과 삶을 대변했을 서가의 책들, 사진과 옷,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 위해 피웠을 착화탄의 포장지와 토치와 부탄가스를 성실하리만치 분리수거까지 해 둔 쓰레기들.


그 흔적들에서 저자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삶의 일면들을 읽어낸다. 처절하고 끔찍한 현장에서, 고인이 죽음에 이르렀을 상황보다 그가 살았던- 그리고 살고 싶었을 삶이 어땠을지 곱씹는다. 나름의 방식으로 고인의 삶을 되짚는 저자의 태도는 마치 묵념 같았다. 한세상 삶이 고인에게 어떤 괴로움을 주었을지라도, 이 흔적을 지우는 작업으로 인해 그가 겪었을 외로움도 괴로움도 모두 훌훌 털어지기를 바라는 어떤 의식 같았다.






생과 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공존. 그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고.


그 아이러니는 참으로 거대한 회의와 무력으로 나를 이끌고야 만다. 결국 모든 것은 소진과 소멸이라는 한 방향으로 흐르고, 스러져 갈 수밖에 없을진대, 인간이란 존재는 어떻게 이렇게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온갖 난관 속에서도 부득불 살아내는 것인지.


빌딩 숲이 높다랗게 솟은 대로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멍하니 본다. 언젠가는 사라지고야 말 부질없을 것들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찾아내고 가꿔내는 사람들. 그 모두의 한결같은 목적의식으로, 그 덕으로 내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거겠지. 그 의지란 대관절 어디서부터 어떻게 온 것일까 생각한다. 그 답을 찾을 때까지 나는 이 제자리에 붙박여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의문은 현관문 왼쪽에 놓인 가정용 분리수거함을 정리하며 풀렸다. 재활용품과 쓰레기를 구분해두기 위해 네 칸으로 나누어진 수거함에 사라진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불을 피우는 데 쓴 금속 토치램프와 부탄가스 캔은 철 종류를 모으는 칸에, 화로의 포장지와 택배 상자는 납작하게 접힌 채 종이 칸에, 또 부탄가스 캔의 빨간 노즐 마개는 플라스틱 칸에 착실하게 담겨 있었다.

자살 직전의 분리수거라니,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이전에 다른 자살자의 집에서 번개탄 껍질을 정리해둔 광경을 본 적은 있지만, 이것은 너무나 본격적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착화탄에 불을 붙이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중에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고? 그 상황에서 대체 무슨 심정으로? 자기 죽음 앞에서조차 이렇게 초연한 공중도덕가가 존재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막강한 도덕과 율법이 있기에 죽음을 앞둔 사람마저 이토록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는가.

(24-25쪽)





서가書架는 어쩌면 그 주인의 십자가十字架 같은 것은 아닌지.빈 책장을 바라보자면 일생 동안 그가 짊어졌던 것이 떠오른다. 수많은 생각과 믿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인생의 목표와 그것을 관철하고자 했던 의지, 이끌어야 했던 가족의 생계, 사적인 욕망과 섬세한 취향, 기꺼이 짊어진 것과 살아 있는 자라면 어쩔 도리 없이 져야만 했을 세월.

(91쪽)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이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손 놓지 못하고 품어온 내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 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젊은 나이에 미쳐서 스스로를 돌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한 불행한 남자를 보았다면, 마치 인생의 보물인 양 부질없이 간직해온 내 과거의 불행함을 그 남자에게 그대로 전가하고는, 나는 결백하답시고 시치미 떼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바라보듯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이 지하 방에 관해 알게 된 유일한 진실이다.

(101쪽)




그 누구라도 자기만의 절실함 속에서 이 세계를 맞닥뜨린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사치의 이면에는 어릴 때부터 뼈에 사무친 경제적 결핍감이, 사랑의 소품으로 집 안 곳곳을 장식하려는 마음 밑동에는 사랑받지 못하고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뿌리를 내린 채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는지도 모른다.

(109쪽)





그동안 자살이 일어난 곳을 드나들며 목숨을 앗아간 수단이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을 목도하곤 했다. 베란다 천장이나 가스관에 매달린 빨랫줄의 매듭을 풀고, 캠핑용 간이 화로에 수북이 쌓인 착화탄의 재를 털어서 비우는 일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다. 창문 틈으로 드나드는 바람에 끊어진 밧줄이 흔들리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연민이 밀려온다. 유독한 연기를 피우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한 줌의 재가 봉투 속에 가볍게 떨궈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죽은 이의 선택을 탓하고 싶은 교만 따위는 어느새 흩어지게 마련이다.죽은 이의 진심을 헤아리지도 못하면서 감히 누가 함부로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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