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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Sep 08. 2020

책 <침입자들>, 귀여운(?) 스릴러 드라마.

위트 있는 사건과 깔끔한 문장의 군더더기 없는 만남.






<침입자들>
정혁용
다산책방
2020년 3월






대책 없는 무일푼 '노답 인생'인 것처럼, 하류 인생의 완벽한 주인공인 것처럼 등장한 남자. 그가 구직 사이트에서 찾은 택배기사 일을 시작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탑차를 끌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듣게 되는 이야기들. 다들 그의 속내를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라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았다는 듯 정말이지 뜻밖의 계기로 다가오는 사람들.



남자는 그들이 성가시다. 그는 혼자가 편한 부류다. 택배를 선택한 것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일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지만, 첫날부터 그 바람은 와장창 무너지고 만다. 늘 같은 시간에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여자, 오줌을 쌌으면 손을 닦으라며 생수통을 내미는 남자, 고마우니 토요일마다 영업장의 술을 제공하겠다는 트랜스젠더 종업원 등등 화려한(?) 라인업이 매일 그를 기다린다.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그 사연에 남자가 휘말리게 되는 방식 또한 범상치는 않다. 쉽고 재미있게, 빠르게 읽히는 사건들 속에 무게감이 묵직하다. 저마다의 색색깔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지만 그렇다고 사연을 붙들고 구구절절 늘어지지도 않는다. 인물들에 대한 전사가 없어도, 단지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이 인물은 어떤 인물일 것이다' 짐작하게 되는데, 별다른 게 없어도 그 인물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문장들이 위트 있고 깔끔하다. 군더더기 없는 전개도 그렇고.



마냥 자유로운 영혼인 것처럼 굴었던 남자의 실상은 알고 보면, 숨이 붙어있으니 살아내야만 하는 시간을 극복하고 견뎌내려는 어쩔 수 없는 인간 그 자체였다. 책을 끝까지 읽고서야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소설에서 드러나지 않은 그의 인생을 더듬어보게 되었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다시 첫 장을 펼쳤다. 첫 문단이 까끌하게 읽혔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영화 <범죄의 여왕>(2016)(이요섭 감독) 생각이 많이 났다. 출판사가 내세운 것 같이 '하드보일드'까지는 글쎄, 싶은 생각이 들지만 스릴러가 가미된 드라마로 연출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 작품이다. 책<곰탕>(김영탁) 생각도 났고.














페터 회는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서 이런 문장을 썼다.

'나는 항상 패배자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약하다. 환자, 외국인, 반에서 뚱뚱한 남자애, 아무도 춤추자고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심장이 뛴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영원히 그들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61쪽)





구미가 당겼다. 돈은 날로 먹을수록 좋으니까. 돈의 가치는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피땀을 흘려서 번다? 피땀이 아깝다. 노동의 가치? 그런 건 브런치나 먹으며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지 않는 인간들이나 함부로 쓸 수 있는 말이다. 되도록 날로 먹고 싶은데,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 뿐이다. 안타깝게도 흙을 파먹고 사는 재주도 없고.

(114-115쪽)





"사회는 집념, 포기하지 않는 노력, 뭐 그런 걸 강요하지만 글쎄요, 제 생각엔 희망이란 게 사람에게 힘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괴롭히기만 할 뿐인 것 같아요. 그럴 땐 포기하면 편하죠. 정말 그래야 할 일은 살면서 한두 가지 정도인 것 같아요. 대개의 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도망갈 수 있다면 도망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는 뜻이니까."

(189쪽)





조 따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부코스키는 <팩토텀>에서 이렇게 썼다.

'도대체 어떤 빌어먹을 인간이 자명종 소리에 새벽 여섯시 반에 깨어나, 침대에서 뛰쳐나오고, 옷을 입고, 이를 닦고, 머리를 빗고, 본질적으로 누군가에게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는 장소로 가기 위해 교통지옥과 싸우고,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하는 그런 삶을 기꺼이 받아들인단 말인가?'

(322-323쪽)





'어둡고 탁한 반생이었다. 나에게 청춘이란 게 있었을 리 없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반생의 기록>에서 이렇게 썼다. 그랬던 것 같다.

(341쪽,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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