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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Aug 04. 2020

영화 <밤쉘>, 2차 가해 속에서도 진실은 드러나는 법





영화 <밤쉘 :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Bombshell>(2019)
감독 제이 로치
출연 샤를리즈 테론, 니콜 키드먼, 마고 로비 외
개봉 2020. 07. 08.






보통의 경우라면 학교 폭력의 피해자에게, 직장 내 갑질의 피해자에게, 군대 내 폭력의 피해자에게는 '네가 그럴 만한 여지를 줬겠지.', '왜 처음 당했을 때부터 말하지 않았니?' 와 같은 2차 가해성 발언을 하지 않는다. 그런 발언을 서슴지 않는 극소수가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대다수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 마련이다. 바람직한 사회화 과정을 거친 사회 구성원이라면, 범죄 유발의 원인과 지속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희롱 추행 강간을 비롯한 성범죄에 있어서는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성 발언이 난립한다. 피해자의 옷차림과 표정과 손짓과 눈빛을 범죄 행동에 대한 어떤 시그널로 가공해 내기에 여념이 없다. '감자탕 집에서 상대의 앞접시에 고기를 덜어주는 행동'*마저도 성적인 시그널로 읽히는 세상이다.



피해자가 느꼈을 수치와 불안과 절망 그리고 두려움은 안중에도 없이, '피해자가 여지를 주었을 것이다 - 어떤 여지를 주었는가 - 역시 원인은 피해자였다'의 삼단논법으로 성범죄를 대하는 태도들은 익숙하다. 여기까지는 차라리 양반이다. 여기에 덧씌워지는 무고誣告의 프레임은 또 어떤가. 이는 2차 가해의 완벽한 완성으로, 범죄 사실 폭로와 법적 대응에 대한 조롱을 동반한다. 매우 낯익은 과정이다.



<밤쉘 :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그 행태를 꼬집는 영화다. 직장 내 최고 권력자에 버금가는 이의 희롱과 추행과 강간. 그 폭로에 대한 의심과 혐오의 눈길들. 그 눈길을 피해 물밑으로 숨는 피해자들은 어떤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는지. 그러나. 그럼에도 진실은 어떻게 세상에 드러나고야 마는지에 대하여 말한다. 어떤 시그널로 읽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는 나와 우리의 세상에서, <밤쉘>은 잠시나마 위로가 된다.







* 2019년 가해자가 강간으로 기소된 한 사건에 대하여, 1심 재판부 '감자탕 집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앞접시에 고기를 덜어준 행동은 성관계에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일 수 있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달에 열린 항소심 판결에서는 강간이 인정되어 가해자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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