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 없는 횡단보도 앞에는 성미 급한 운전자들이 많다. 건너려는 보행자가 있어서 잠시 멈추면 얌전히 기다려주는 운전자가 있는 반면, 아주 못마땅해서 차를 슬금슬금 바짝 붙이거나 클락션을 울리는 사람도 있다. 차량 행렬은 끝이 없는데 멈춰주는 차는 없을 때, 좀 세워주면 안되나 싶다. 잠깐 멈춘다고 5분 늦게 가는 것도 아닌데. 설사 5분 늦게 간다고 해도, 그거 좀 늦으면 어때서.
얼마 전 일이다. 교통섬을 끼고 우회전을 하려는데, 건널 기회를 살피는 보행자가 보였다. 내 앞차들은 망설임의 기색도 없이 쭉쭉 빠져나가 본선으로 합류하는 길에 오르고 있었다. 룸미러를 보니 내가 정지선 앞에 서도 뒷차가 급제동을 하게 된다거나 제동을 하지 못할 거리와 속도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정차했고, 뒷차도 안전하게 정차했다. 다리가 불편하신 것 같은 보행자는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넜다.
뒷차였던 파란색 포터는 정차는 안전하게 했어도 기분은 나빴나 보다. 교통섬을 빠져 나가자마자 부우웅- 비껴 달려나오더니, 황색 안전지대를 침범하며 내 옆을 추월해 나갔다. 황천길 조찬모임에 늦으셨나. 추월 후에도 현란한 칼치기 기술로 도로를 돌파하던 포터는 결국 저 앞 신호등에서 나와 나란히 섰다. '잠깐 멈춘다고 5분 늦게 가는 것도 아닌데'라는 이론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뭐 그런가 보다, 생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차창을 내리고 담배를 피우던 포터 아저씨가 이쪽을 향해 이죽대는게 아닌가. 비가 쏟아진 후의 공기가 맑아 나도 창문을 내리고 있었고 눈이 마주쳤다. 이럴 땐 무대응이 최고라는 걸 알지만 별로 지고 싶지 않았다. 눈을 피하지 않고 쳐다봤더니 뭘 보냔다.
"안전운전 하셔야죠."
대꾸했더니 돌아오는 답이 가관이다.
"내가 뭐!! 내가 뭐!! 신고해!! 신고해!! 에이 CIVA!!"
착 붙는 라임이 <매드맥스> 워보이인 줄 알았다. 아니면 <쇼 미 더 머니>(아마도 그는 예선 광탈이었을 듯)라던가. 그냥 바빠서 그랬다고 하면 되지,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내가 마동석이었어도, 강호동이나 김동현이었어도 그랬을까? 100%의 확률로 아닐 거다. 운전을 막 하는 아저씨는 선택적 분노조절장애가 분명했다. 신호가 바뀌었고, 포터 아저씨는 피우던 담배를 아스팔트에 버리고 다시 부우웅- 갔다.
해달라는데 별 수 있나. 해드리는 수밖에. 블박 영상으로 교통신고 어플에 접수했다. 안전지대 진입금지 위반이 명확하게 입증되었다는 답변이 왔다. 과태료가 아닌 범칙금 7만원에 해당하는 항목이라 포터 아저씨는 그 바쁜 시간을 쪼개서 경찰서에 방문해야 할 것이다. 아이고 참, 바쁜 분을 더 바쁘게 해서 어쩐다. 제가 알 바는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