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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yss Nov 22. 2023

우리는 가볍게 사랑하자

여름 바다에 뜨는 가벼운 것들, 2019

 

  우리는 가볍게 사랑하자. 좋아하는 시의 좋아하는 구절이다. 영화를 감상한 후 제목의 '가벼움'에 대해 줄곧 생각하다 이 구절이 떠올랐는데, 나는 이 시의 구절만큼이나 이 영화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 혜리는 가라앉아 있는 상태이다. 헤어진 전 연인의 결혼식 청첩장을 받은 이후 아무리 일에 집중하려 해도 그의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고, 입술 사이로는 연신 한숨이 새어나온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마음을 나누어 온 상대와의 추억, 어쩌면 그 추억에 달라붙은 내 자신의 조각까지도 완전히 떼어내야 하는 혜리의 마음은 이토록 무겁다.

하지만 그렇게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되어야 한다. 혜리는 이미 과거형으로 남은 지 오래된 모든 일을 내려놓고 갈 때가 되었고 무슨 이유에선가 주저하고 있다. 그 증거로 혜리의 눈빛은 여전히 쓸쓸하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주현을 훔쳐본다. 혜리는 정리해 놓은 짐을 단지 집 밖으로 내보내지 못해 멀뚱히 서 있고만 있었다.

선생님, 수영할 줄 아세요? 주현은 이마에 '나는 당신이 좋아요' 라고 써 놓은 얼굴로 혜리에게 가볍게 손을 내민다. 우리 함께 이른 새벽 여름바다 속으로 걸어가 보자고. 떠오르는 햇빛을 받은 수평선 아래로는 혜리가 그만의 이유로 무거워지던 과거의 시간 동안 우연히 엇갈려 얽혀 왔던 둘의 사연이 반짝거린다. 또한 그동안 조용히 혜리를 향해 숨죽여 왔을 주현의 애정 어린 시간들이. 혜리는 정리해 둔 짐을 이제 제자리에 놓아둔 채, 주현의 손을 잡고 새로운 사랑의 바다에 걸어 들어가 보기로 한다.

날아오르는 게 얼마나 무거운지, 어떤 무게가 중력을 거스르는지 모두 무시하고 사뿐히 비행하는 모든 새들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여름바다에 잠긴 혜리와 주현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 다가올 중력을 모르는 듯이, 우리 우선 가볍게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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