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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yss Dec 02. 2023

파괴되고 복구되듯이

몽 루아(mon roi, 2015)


  네이버 영화 평을 보면 뱅상 카셀에게 물김치 싸대기를 날려도 시원찮다고 한 사람이 있던데, 우선 그 사람에게 십분 공감한다고 적어 두고 싶다. 그 새끼는 자라다 만 주제에 나이만 먹어 가는 쓰레기고, 자기 속은 어떨지 몰라도 남 속은 하나도 신경 쓰질 못하는 세미 사이코패스다. 


 이 영화에는 그러나 다른 주요 인물이 있다. 그 남자를 사랑한 토니이다. 토니는 그를 만났을 땐 젊고 유능한 변호사였는데, 그를 사랑하며 간간이 충만한 행복도 느끼지만 그보다 압도적인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마약중독자에 여전히 전 연인에게 얽매인, 망가진 조르조를 사랑하며 토니의 삶은 함께 망가져내린다. 같이 타고 가던 차에서 쫓겨나듯 나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악을 지르는 토니의 모습은 고통에 압도되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인간 그 자체다. 


 망가진 사람을 사랑하면 함께 망가지는 걸까? 그런 의문과, 토니는 과연 조르조를 사랑하는 걸까, 영화 중반까지 둘의 궤적을 쫓아가며 나는 동시에 두 가지 의문이 들었었다. 그러나 영화가 후반으로 흐를수록, 토니는 어쩔 수 없이 조르조에게, 사랑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납득하게 됐다. 그를 놓고 싶지 않은 이유는 구구절절한 현실의 사연보다도 어쩌면 허상 같은 사랑이다. 


  누구나 일생에 파괴적인 사랑을 한 번쯤은 하게 되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 했던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내가 말한 파괴적인 사랑은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 본인을 갉아내리는 사랑이다. 그런 사랑 앞에 무력한 사람들은 어떻게 본인을 지켜내야 할까? 그것조차 잘 모르겠다. 그저 무뎌지는 것만이 답인지, 그것 또한. 


  오프닝에서 토니는 원인이 고의인지, 실수인지 모를 스키 사고를 당하고 심각한 무릎 부상을 입는다. 사랑이란 너무 사소하고 낭만적인 개념처럼 들리면서도, 또한 사람을 가장 냉혹하게 파괴해 버릴 수 있는 개념 같기도 하다. 사랑이 지나간 이후 어느 의미로든 일시적인 불구가 되어 버린 듯한 토니는 결말 부분에서 다시 처음과 같은 말간 얼굴로 등장한다. 어느새 치유된 듯한 토니의 얼굴은, 아무리 파괴된 인간이라고 해도 묵묵히, 꾸준히 나아지려는 의지를 갖고 노력한다면 어느새 선물 같은 평안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내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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