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과 오지랖으로 범벅인 이기심으로 쓰는 편지
여름에 보내고 겨울에 받길 바라는 편지
안녕?! 그동안은 잘 지냈어? 오랜만이야.
이 편지를 볼 때쯤엔 내가 괜찮아졌으면 좋겠고,
너도 가끔은 날 생각하며 아련하게 흐릿한 기억이라도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
부디, 그 기억이 나쁘진 않았으면 좋겠고
혹시 그때 내가 네 마음하나 몰라주며, 나의 이기적인 욕심에 울면서 네가 없으면 안 될 것처럼 매달렸던 그때에, 너에게 나에 대한 원망스러움이나 불편하고 질리는 마음이 들었다면 그 마음들도 이쯤엔 추워졌을 바람에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그때 나 때문에 너의 세계에 신경 쓰지 못해서 소홀해진 부분들도 다 메꿔졌으면 좋겠다.
서로가 없는 삶으로 돌아간 지 몇 개월이 지나고 보내는 이 글자들이 너에겐 갑작스럽고 생각보다 양도 많아서 피로감을 느꼈다면 미안해. 주절주절 또 네 생각에 쓰고 있는, 나는 이기심인지 죄책감인지 모를 감정에 너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야.
나는 너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고는 내 생각만 하고 너에게 서운함을 표했던 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너의 하루는 그렇게 지쳤을 텐데 그것도 모르고 너에게 서운하다, 벌써 변했다. 잘도 그런 소리를 하면서 떼를 썼던 것 같아 너무 미안해. 그게 너무 미안해서 계속 미안한 마음이 남고 남아서 너를 계속 기억하게 만들었어.
이제 이 이기심이 가득한 글자들을 너에게 보내버리면 내 죄책감과 너의 생각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을까.
나를 따라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같이 하려고 준비했던 것들은 버렸을까. 궁금한데 대답은 못 듣겠지?
사랑하지 말고 그냥 친구로라도 남았으면 같이 계속 그 취미들을 할 수 있었을까. 혼자서는 뚝딱거리며 어려워하는 네 모습이 생각나서 괜한 오지랖의 걱정이 드네.
인연이라면 다시 만나겠지. 헤어진 직후에 그 말을 듣는 건 어찌나 아프던지. 다신 안 올걸 알 거 같았거든, 다시 마주쳐도 네가 도망을 치던, 내가 도망갈 것 같았거든. 그래서 앞으로는 다시, 절대는 못 마주치리라 생각했어.
시절인연 時節因緣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 때가 되어 인연이 합함.
안 좋은 타이밍에 만나서 우리가 이렇게 된 거라면,
언젠가 또 만나는 날이 오겠지.
미숙하고 행복하기에 너무 서둘러 성급함만 가득했던, 서툴고, 엉성하기만 했던 우리, 둘 다 성장한 모습으로 마주하는 날이 한 번쯤은 오길 바란다.
나도 먼 훗날에 너를 마주치더라도 부끄럽지 않고, 내 중심을 더 굳게 다져서 다시는 흔들리지 않게 성장할 거야. 만약 못 보게 되더라도 기억할 거야.
너는 멀리서 나를 볼 수 있을지 몰라도, 나도 성장한 너를 볼 수 있게 나타나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라도 먼 훗날 너에게 보내고 싶은데, 이미 네 마음에 티끌조차 내가 남지 않고 정리했다면 보내봤자 더 구차하고 구질구질하게 보이기만 하고, 부질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인연이라면 굳이 이런 말을 너에게 전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거 아닌가?
살면서 다시 만난 인연 같은 사람은 없어서 그게 처음에 무서웠어.
처음에 너를 제일 놓기 싫었던 이유야. 세상에 다른 남자들도 많고 나도 그중에 누군가를 또 만날 수도 있겠지만, 너는 너 하나라서. 너만 줄 수 있는 행복이 있으니까. 그런 네가 이제 나한테서 사라진다는 게 너무 슬퍼서 안 잡을 수가 없었어. 구차하게 구질구질하게 아니라는데도 잡고 또 잡고 그래야 후회라도 안 할 것 같아서 그랬어.
근데 이번에도 아니라면 뭐 받아들여야겠지만
성장한 네 모습은 꼭 한 번쯤은 보고 싶은 이기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