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너와 나
그때 그 어린 날, 우리는 왜 멀어졌을까. 되짚어보면 참 어리고 흔한, 아이들의 이야기다.
내가 자퇴를 하고 서울로 떠난 사이, 그 친구는 수능을 치렀다. 그 무렵 여느 풋사랑들이 그렇듯, 얄궂게도 그 친구는 나의 친한 친구와 연인이 되었다.
그때는 그게 질투인지도 몰랐다. 나의 '베프'이면서, 동시에 내 친구의 남자친구가 된 그 아이. '이제는 예전처럼 편하게 볼 수 없겠구나.' 그 생각에 나는 스스로 선을 그었다. 둘의 관계를 그저 멀리서 지켜보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둘의 인연은 짧게 끝났지만, 나 역시 서울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느라 우리는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서로의 소식조차 모르고 몇 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뜬금없이 그 애한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약속이 잡히고 나는 왜인지 옷도 새로 사 입고, 평소 잘하지도 못하던 화장에 공을 들였다. 단순히 오랜 친구를 만나서? 글쎄, 그런 단순한 감정은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헐레벌떡 달려간 이태원의 어느 펍.
그곳에 예쁜 남색 니트를 입은 그가 앉아 있었다. 여전히 내 기억 속 그대로였다. 착하고 반듯한 모범생, 웃는 모습이 참 인상 깊은 내 친구.
성인이 되어 다시 마주 앉은 우리는 묘하게 들떴다. "우리가 여기서 술을 다 마신다니." 옛이야기부터 근황까지, 대화는 끊길 틈이 없었다. 그날의 만남을 기점으로, 우리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성인이 되고 다시 만난 우리는 시간을 쪼개 데이트를 했다.
학교 특성상 기숙 생활을 해야 했던 그 친구는 주말밖에 시간이 안 됐고, 학생회와 알바로 바빴던 나도 주말을 쪼개야 했다. 그래도 우리는 남들처럼 평범하고 예쁘게 만났다. 최신 영화를 챙겨 보고, 술잔을 기울이고, 친구 커플과 펜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 친구 학교의 축제 날, 평소보다 훨씬 듬직하고 멋진 모습으로 서 있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날 나는 그의 동기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아침 일찍 미용실에 들러 머리까지 하고 갔었다. 내가 알던 그 친구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내 옆에 서 있다는 게 참 벅차고 설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청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는 사망년(3학년)의 늪에 빠져 있었다. 실습, 다가오는 취업 압박, 학생회 간부 활동까지... 혼이 쏙 빠져버린 나는 연애도, 내 삶도 충실히 지탱할 여력이 없었다.
우리가 함께 봤던 영화, <미드나잇 선>이 기억난다. 내 생일 즈음이었고, 내가 해외 일정을 떠나기 며칠 전이었다. 영화 속 슬픈 사랑 이야기에 펑펑 울면서도,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우리의 마지막 행복한 날이 될 줄은.
너무 오래된 탓에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불행은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몰려왔다.
설상가상으로 그 무렵엔 학교에서 가는 해외 일정까지 잡혀 있었다. 고작 며칠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타이밍이 참 야속했다.
귀국 후 시작된 실습 도중 원인 모를 고열과 복통으로 쓰러져 6일이나 입원을 해야 했고, 비슷한 시기에 그 친구 역시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입었다.
수술과 재활을 위해 휴학을 하고, 본가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대로 가면 장거리 연애를 해야 하나? 몸도 마음도 지친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
서울에 남아달라고 붙잡고 싶었다. 아니, 가지 말라고 붙잡기도 했다. 하지만 냉정하게도, 바쁜 내가 옆에서 아픈 그를 케어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연히 가족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게 맞다는 걸 나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저 내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
그즈음 우리는 참 많이도 다퉜다. 서로를 이해하기엔 내가 너무 여유가 없었고, 그는 몸이 아픈 데다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아마 갑작스러운 휴학 결정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들로 그 역시 생각할 게 참 많았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위로가 필요했던 순간에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채, 다툼 끝에 허무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이별 후에도 나는 슬퍼할 틈이 없었다. 바쁜 학과 생활과 취업 준비, 쏟아지는 과제들... 그 핑계 뒤에 숨어 나는 괜찮은 척을 했다. 헤어지자마자 바보같이 홧김에 사진첩을 모조리 비워버린 탓도 컸다.
그게 참 사무쳤다. 너무 그리웠는데, 보고 싶었는데. 정신없이 바쁜 생활에 휩쓸려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이 너무 빨리 흐릿해져 버렸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붙잡을 사진 한 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워낙 같이 아는 지인들이 많아 고향 친구들에게는 입을 뗄 수가 없었고, 서울 친구들에게 말하자니 왠지 비웃음을 살 것만 같았다.
"고작 6개월 정도 만난 거 아니야?"
누군가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까 봐. 내 아픔이 유난스러운 것으로 취급받을까 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나는 그 긴 시간을 철저히 혼자 앓았다.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채, 그 시절의 후회 속에 갇혀 지냈다.
누구를 만나도 그 친구와 비교를 하게 되었다.
하필 그즈음 엮였던 남자들이 하나같이 조금 이상했던 탓도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맨손으로 만지고서도 손을 안 씻는 남자라던가, 식탐이 어마무시해 내 몫까지 탐내던 남자라던가...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끝없이 후회했다. '내가 조금 더 잘했다면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미성숙했던 탓에 그 애가 지쳐서 떠난 걸까?'
자꾸만 나를 갉아먹는 자책들이 꼬리를 물었다. 우리가 조금만 더 늦게 만났더라면, 우리가 조금 더 성숙했을 때 만났더라면...
그랬다면 결말이 달랐을까.
그렇게 긴 앓이의 시간을 지나오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때의 이별도, 아쉬움도, 결국은 내가 내린 수많은 작은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였다는 것을.
그 누구의 탓도, 타이밍의 잘못만도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내 삶에서 가장 치열하게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들을 했을 뿐이다. 비록 그 선택이 사랑을 놓치는 결과를 가져왔을지라도, 그 또한 온전한 나의 몫이었다. 그러니 더 이상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아, 그리고 웃픈 교훈도 하나 얻었다. 그날 이후 내 인생에 애매한 남사친은 멸종되었다.
나에게 남사친이란? 하늘이 두 쪽 나도, 지구가 멸망해 단 둘만 남아도! 절대 이성으로 보이지 않을 사람이어야 한다.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먼지 한 톨이라도 보인다? 이 사람이 나를 여자로 보는 것 같다? 가차 없이 아웃이다.
덕분에 내 인간관계는 아주 청정해졌지만... 뭐 어쩌겠는가.
사랑했던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아픔만은 선명했던 날들. 그렇게 그 해 나의 여름은 가장 뜨거웠고, 가장 시렸으며, 나는 조금 더 단단한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