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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찍어내는 일

우리네 마음은 어떤 형상을 하고 있나요 - "저기, 우리 대화 좀 할까"

by 김은규

가장 좋아하는 힙합 앨범이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거침없이 재지팩트의 1집, "LIfes Like"를 꼽을 것 같다. 그들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재즈느낌이 물씬 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비트가 귀를 즐겁게 한다. 하지만 이 앨범을 최고로 뽑는 이유는 단언컨대 인생을 관통하는 가사에 있다.


smoking dreams 2.png 1집 수록곡, "Smoking Dreams"의 가사



평소 여느 날과 같이 살았을 뿐인데, 젊음의 대가는 언제까지나 유효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날. 주변인들과의 확연한 격차에, 갑자기 마음 한 구석을 좀먹기 시작한 불안. 무한한 자기혐오와 자기 과신 속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그 시절의 빈지노가 보인다. 백지 위, 마음을 먹으로 칠하고 그대로 찍어낸 것 같은 그의 가사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 삶을 잘 찍어낸 작품은 그래서 늘 사랑받는 것 같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 "저기, 우리 대화 좀 할까"도 그런 작품 중의 하나다.


막연하게 서른이 되면 괜찮아질 줄 알았어요.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나만 아직도 모르겠는 그때, 나 스스로 대화하며 그림으로 불안을 풀어갔습니다.

애석하게도, 늘어나는 숫자는 저절로 나잇값을 책임져주지 않았다. 나이는 숫자의 불과하다는 말이 이런 건가. 스무 살이 된다면, 대학생이 된다면, 전역을 한다면,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한다면. 미래에 살고 있는 나에게 한껏 멋들어진 기대를 걸며, 지금의 불안과 무능력함을 어찌어찌 피해보려는 것. 막연히 긍정했던 미래에 막상 당도했을 때, 생각했던 것과는 먼 나의 모습. 아직도 미숙하고, 또 초라한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서른이 되어버린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우리 대화 좀 할까."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는 생각의 소용돌이를 하나씩 헤집어간다. '불안함'으로 뭉뚱그려 다가온 그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마주해 보는 시간. 정리되지 않는다, 곤욕이다. 그렇게 여러 시간이 지나고, 상징계에 있는 그것을 실체로 하나둘씩 끄집어낸다. 텍스트이자 언어로, 그림이자 음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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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쓸모는 대체 무엇인가 -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아무 이유 없어, 존재 자체가 이유지


보통 이런 먹먹한 생각의 초입은 '이런 것도 못하는데, 나 왜 살아?'에서 시작하니깐. 스스로가 생각했던 능력치에 훨씬 미치지 못했을 때, '아 나 진짜 쓰레기 같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나. 존재 자체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만, 존재한다고 해서 세상에 인정받을 수 있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야박한 우리네 세상. 종량제 봉투 옆에 쪼그려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곧 수많은 회사에 내보이게 될 처량한 스펙과, 자소서를 보여주는 내 모습 같달까.


KakaoTalk_20240221_184326798.jpg 다 떠나는데 - 나만 계속 그 자리에 남아있네


그러다 옆을 보면 하늘로 향하는 코끼리들, 동기들, 선배들, 후배들. 저마다의 살 길을 찾아가는 그들의 불안함도 있겠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그들의 비행하는 모습밖에 안 보이고. 언제쯤 날아갈 수 있을까.


내 마음의 형상은 오늘도 뾰족하다.



”해당 도서는 독립출판물 온라인 서점 인디펍으로부터 서평 작성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받았습니다.”


https://indiepub.kr/product/저기-우리-대화-좀-할까/5693/category/30/displ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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