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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면 독립서점에 가요

따스했던 독립서점 기행록

by 김은규

원래부터 책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아니, 더 이상 흥미가 떨어졌다고 해야 하나. 초등학교 5학년, 당시 가장 좋았던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를 손에 쥐었을 때부터 내 시선은 글자가 아니라 앵그리버드와 바운스 볼로 향했다. 앱 스토어를 열면, 수많은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고 더 이상 책은 나의 유흥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약 8년이 지나고, 국방부가 나의 휴대폰을 뺏어갔다.


근무했던 곳은 해안 경계작전에 들어가는 곳, 실근무만 잘 서면 별도의 터치가 없었다. 군 생활 전문 인플루언서도 있을 정도로 자기 계발이 필수로 자리 잡았지만, 거기서까지 토익책을 펴고 공부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해서 공부가 잘 될 것 같지도 않았고. 그래서 나는 책을 다시 집어 들기 시작했다. 분기별로 쏟아지는 양질의 새 책들이 정말 읽고 싶게 생겼더랬다 (진중문고 박스 안에 매 분기마다 들어오는 책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덕분에 초등학교 이후로 책에 대한 흥미가 다시 붙었다. 읽었던 책의 내용을 계속 기억하고 싶어서 독후감도 차곡차곡 썼다. 그러면서 조금씩 글 쓰는 요령이 붙었고, 덕분에 사단, 대대, 중대급에서 열린 각종 글쓰기 대회에서 크고 작은 상을 휩쓸며, 총 6일의 포상휴가를 쟁취해 냈다.


책을 읽으면서, 책에 대한 관심과 흥미도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독립서점'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책방 사장님들마다 들여놓는 책과 DP방식이 저마다 각각 달라서, 누군가의 독서 취향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곳들을 들르며 있었던 추억들이 꽤 따뜻해서, 독립서점 기행록을 써볼까 한다.



서울 망원동 "이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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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갓 상병을 달고 휴가를 나왔을 때 망원동에 갔었다. 그냥 밥 먹고 카페 가기 좀 뭐 했다. 짝꿍이랑 땅땅땅 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괜히 좀 특별한 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무슨 느낌인지 알잖아!). 망원동 거리를 두 바퀴쯤 거닐다가 "독립서점 좀 구경해 볼래?" 하고 운을 떼었다. 바로 핸드폰을 열어 나오는 독립서점 몇 군데를 찾았고, 그중 하나가 이곳이었다.


최대한 다양한 책을 구비하는 대형서점들은 종교, 문학, 여행, 에세이 등등, 장르에 따라 책을 구분한다. 그래야 찾고자 하는 책을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 독립서점은 다르다. 키워드가 "꽃"이면 온갖 꽃과 관련된 서적이 다 달라붙는다. 에세이, 시집, 그림책, 동화할 것 없이 말이다. 기존과 사뭇 다른 이 분류법이 나는 제법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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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씩 선물하기로 했는데, 마음에 드는 책들이 너무 많아 결국 두 권씩 사주게 되었다. 기존의 독서보다 작가의 색채가 더욱 도드라진 독립출판물들의 매력적이어서 고르기 정말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한참을 고심하다가 두 책을 골랐다. 조민경 작가의 "꽃이 온 마음", 김해리 작가의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이 두 권이다. 당시의 관심사와 상황에 맞는 책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책을 통해 마음도 선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뿌듯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서울 연남동 "SPRING FLARE"


덥다 못해 찌던 8월이었다. 전역 전 휴가를 막 나온 시기에, 마침 친한 형이 학사모를 쓰는 날이라 부리나케 지인들과 레터링 케이크를 준비하려고 연남동으로 향했다. DDP에서 있던 박람회를 보고 출발했던 터라 꽤나 빨리 도착할 수 있었고, 그때 지인이 잠깐 여기서 책 구경하고 있으라고 보내주었던 독립서점이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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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찍었던 사진은 없어서 업체 사진을 가져왔다


밖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 널찍하고 시원시원한 구조였다. 주말이 아니었는데도 사람이 꽤나 많았다. 책을 보고 있는 인파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며 책 구경을 했었다. 기억하기론, 철학과 관련된 책들이 꽤나 많았었다. 잡생각 하는 것 좋아하는 내가 지나칠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달까. 그중 한 책이 마음에 들어서 봤더니,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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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과목에서 "사랑의 기술"로 유명했던 그 에리히 프롬 아니야!' 괜히 반가워서 집어 들고, 그 길로 결제까지 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과 장소에서 새로운 책을 만나는 설렘이 아직도 기억난다. 책이 들었던 봉투를 신나게 집어 들고 졸업식으로 향했던 추억은 쉬이 잊히지 않는다.


약속장소에 일찍 도착했다던가, 예기치 못한 자투리 시간이 남는다면 독립서점을 들리는 것을 꼭 추천한다. 이상하게 책과 얽힌 기억은 더 잘 남는 법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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