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구의 증명"
언젠가 책에서 어느 원주민들의 전통 장례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죽은자의 뇌를 먹음으로써 장례를 치룬다고 했다. 뇌를 먹는 원주민들은 “쿠루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 뇌에 구멍이 뚫려 죽는 병인데, 쿠루병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들은 V127이라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게 된다. 식인 풍습의 원인으로 생긴 질병이 스스로 돌연변이를 만들어냈다. 이 돌연변이 유전자는 추후에 치매 예방에 쓰일수도 있다고 한다.
죽은 사람을 먹어 그들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을까. 남겨진 자들은 좀 더 먼 곳까지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 먹었을까. 아님 그들을 차가운 땅 속에 혼자 둘 수 없었을까. 죽은 자의 뇌를 먹게 된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들로부터 파생된 돌연변이 유전자는 치매 예방에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담은 구의 시체를 먹기로 결정한다. 그러고선 다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 남기로. 구와 담은 서로에게 유일했다. 유일한 존재를 땅 속 깊히 묻어버릴 수도, 태워서 한줌에 재로 날려보낼 수도 없었던 담은 구의 시체를 먹기 시작한다. 그녀만의 장례를 시작한다.
어릴 적부터 담과 구는 함께였다. 담은 이모와 함께 살았고, 구는 빚에 허덕이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남아의 괴롭힘에 여자아이가 시달리는 딱 그정도의 관계에서 둘은 점점 가까워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며 학생에서 성인으로, 돌봄 받는 사람에서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는 사람이 된다. 세상은 쉽지 않았다. 구의 부모는 많은 사채를 지고 구가 군대에 있을 때 사라졌다. 그때부터 사채업자에게 시달리고 도망가다가 결국 그들에게 맞아 죽는다.
담과 구는 서로에게 유일했다. 담을 보면 구가 보이고 구를 보면 담이 보였다.
사랑한다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완벽한 타인을 떠올리며, 나보다는 그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망상. 행복감과 충만감을 주는 자격의 여부를 종종 계산해본다. 스스로의 부족함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곁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게 멀어졌지만 이내 비어진 공허함에서 오는 사랑하는 대상의 존재감도. 구는 자신에게 담이 과분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래서, 꽤나 오랜 시간 담에게 거리를 두었다.
과거를 설명해야 하는 관계와 그렇지 않아도 되는 관계에는 딱 두 사람분 시간의 간극이 있다.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시간, 그 사람 없이 지내온 나의 시간. 때때로 그 간극은 무한히 길어보인다. 구가 담에게서 멀어졌던 시간동안 다른 사람을 만나며 깨달았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담과 설명해야 알 수 있는 타인은 다르다는 것을.
구는 그래서 담에게 돌아간다. 그러곤 같이 살다가, 같이 도망치다가, 큰 봉고차에서 쏟아져 나오던 사내들에게 쫓겨 생을 마감했다. 구의 영혼값은 매우 값쌌다. 적어도 세계에서는 그랬다. 돈이 있는자의 영혼 값은 없는 자의 값과 매우 다르니까. 세상에서는 그저 돈을 갚는 기계정도로 값이 매겨졌다. 그치만 담은 구의 몸을 먹었다. 먹힘으로써 구는 더이상 자신의 몸을 세상에 내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증명해냈다. 사랑에는 어떤 값어치도 매겨지지 않는 것을. 그래서 구의 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