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지능의 이름들』 제9편 이름을 다루는 사회

― 인공지능을 대하는 마지막 기준

『인공지능과 지능의 이름들』 제9편 이름을 다루는 사회

― 인공지능을 대하는 마지막 기준


이 연작은 기술을 설명하기 위해 시작되지 않았다.

같은 기술을 가리키는 말이 왜 서로 다른 의미를 품게 되었는지를 묻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름의 차이는 곧 사회의 선택이었다.


영어 Artificial Intelligence(아티피셜 인텔리전스) 는 연구 표제로서 탄생했다.

일본의 人工知能(じんこうちのう진코-치노-)는 ‘알다’의 능력을 붙잡았다.

중국의 人工智能(réngōngzhìnéng런꽁즈넝)은 ‘슬기’와 ‘능력’을 결합해 국가 전략의 언어로 확장되었다.

한국어 ‘인공지능’은 이 둘을 거쳐 들어오며 차이를 지웠고, 하나의 고유 명칭으로 굳었다.


이 과정에서 기술은 같았으나 질문은 달라졌다.

무엇을 이해하는가, 무엇을 처리하는가, 무엇에 책임을 지는가.

이 질문의 차이가 곧 제도의 차이로 이어졌다.


오늘날 인공지능이라는 말은 너무 넓다.

생성형, 에이전트, 자동화가 한 이름 아래 섞였다.

이 혼합은 편리하지만, 책임을 흐린다. 이름이 넓어질수록 책임은 옅어진다.


그래서 마지막 기준은 분명하다.

새로운 이름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이름의 경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무엇을 인공지능이라 부를 것인지, 무엇은 자동화로 남겨둘 것인지, 그 선을 사회가 합의해야 한다.


이 합의는 기술자의 몫만이 아니다.

교육, 정책, 언론, 가정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

아이에게 무엇을 ‘인공지능’이라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은, 곧 어떤 책임의 세계로 아이를 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공지능의 미래는 성능이 아니라 언어에서 결정된다.

이름을 정확히 쓰는 사회만이 기술을 신뢰할 수 있다.

이 연작의 결론은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을 다룬다는 것은, 이름을 다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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