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남기는 길 — 「방물장수」가 남긴 기준

사람을 남기는 길 — 「방물장수」가 남긴 기준


처서를 지나며 길이 다시 열리고, 그 길 위로 방물장수 홍 서방이 드나들었다. 해마다 같은 때, 같은 길을 돌며 그는 물건을 팔고 외상을 놓고 관계를 이어갔다. 그 드나듦은 끊어지지 않았고, 그 관계는 오래 이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쌓일수록 분명해지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어지는 것과 남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외상은 관계를 끊어지지 않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이어 짐일 뿐, 남음이 아니다. 붙잡아 두는 힘은 있으되, 머물게 하는 힘은 없다. 그래서 관계는 이어져도 사람은 남지 않는다. 드나듦은 잦아지지만 마음은 점점 자리를 비운다.


치부책은 더 정확하다. 무엇이 오갔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분명하게 기록한다. 그러나 그 정확함 속에서 사람은 점점 흐릿해진다. 이름은 남아 있으되, 그 이름 속의 사람은 남지 않는다. 기억해야 할 자리를 기록이 대신하는 순간, 관계는 기능으로 바뀌고 만다.


익숙함은 경계를 허문다. 문턱이 낮아질수록 관계는 가까워지지만, 동시에 기준도 함께 흐려진다. 그 흐려진 자리에서 사람과 물건의 자리가 조용히 바뀐다. 물건에는 값이 붙고, 사람은 값을 매겨지는 존재로 옮겨간다. 그 변화는 어느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드나듦이 쌓이고, 외상이 쌓이고, 장부가 두터워지는 시간 속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던 일이었다.


그래서 그가 내뱉은 말 한마디는 시작이 아니라 드러남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관계는 계산으로 바뀌어 있었고, 사람은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다루고 있었다. 그 차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과는 분명하게 갈린다.


사람을 다루면 관계는 유지된다. 그러나 사람은 남지 않는다.

사람을 대하면 관계는 때로 끊어진다. 그러나 그 끊어짐 속에서만 사람이 남는다.


이 선택은 작아 보이지만, 시간 속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반복은 쌓이되, 그 위에 무엇을 올려놓느냐에 따라 삶의 결이 갈린다. 계산을 올려놓으면 관계는 이어지되 비어 가고, 마음을 올려놓으면 관계는 끊어지더라도 끝내 남는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마지막에 이르러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이미 지나온 시간 속에서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졌는지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어졌던 것들은 대부분 흩어져 있고, 남았다고 믿었던 관계들은 자취 없이 비어 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붙잡고 있던 것은 사람이라고 여겼으나, 끝내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사람은 붙잡을수록 먼저 떠난다.

그리고 떠난 뒤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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