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남기는 빈자리
우리 아이 성교육 길잡이 — 제17편
침묵이 남기는 빈자리
성교육을 이야기할 때 많은 부모들이 가장 먼저 선택하는 방법이 있다.
말하지 않는 것.
아이에게 성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어색하고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괜히 먼저 말을 꺼냈다가 아이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부모들은 차라리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교육에서 침묵은 생각보다 큰 빈자리를 남길 수 있다.
아이의 궁금증은 부모가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는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한다. 친구와의 대화, 인터넷, 영상과 매체 속에서 성에 관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된다.
문제는 그 정보가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은 단편적인 장면이나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먼저 접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정보만으로 성을 이해하게 되면 사람과 관계에 대한 균형 잡힌 시선을 갖기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서 부모의 침묵은 아이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남길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집에서는 말하면 안 되는 이야기라는 메시지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성에 관한 궁금증이 생겼을 때 부모에게 묻기보다 다른 곳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 부모와 아이 사이의 중요한 대화의 길이 닫히게 되는 것이다.
성교육에서 부모의 역할은 모든 것을 먼저 설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질문이 생겼을 때
그 질문을 피하지 않는 것,
그리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부모가 차분하게 이야기를 받아들이면 아이는 성에 관한 주제를 부끄러운 것으로 느끼지 않게 된다. 대신 이해해야 할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성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말했는가가 아니라 대화의 문이 열려 있는가이다.
아이에게 언제든 질문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느낌이 있을 때 아이는 부모를 신뢰하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성교육은 많은 말을 해야 하는 교육이 아니다.
그러나 필요한 순간에 침묵하지 않는 교육이다.
아이의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 것,
아이의 궁금증을 함께 생각하는 것,
그리고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삶 속에서 보여 주는 것.
이러한 작은 대화들이 이어질 때 성교육은 아이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성교육에서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용기는
완벽한 설명이 아니라 침묵을 넘어서 대화를 시작하는 용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