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報恩) — 선행은 사라지지 않는다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가운데 「보은」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겉으로는 풍수지리와 명당 이야기를 빌려 쓴 듯하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베푼 마음이 세월을 건너 어떻게 돌아오는가를 보여 주는 이야기다. 더 좁게 말하면, 이 이야기는 한국인의 삶을 오래 받쳐 온 효(孝)와 인정(人情), 그리고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이 한 줄로 이어지는 서사다.
장마가 시작되려나, 지난밤에 큰비가 왔다.
두 달 전 장례를 치르고 주인집 오 진사네 산자락 끝머리에 땅 한 평을 얻어 아버지를 묻었던 필동이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봉분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걱정되어 먼동이 트자마자 산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발밑의 개울은 으르렁거리며 흙탕물을 휘돌리고 있었고, 물길은 묘터를 갉아먹어 관이 삐죽이 드러나 있었다. 필동이는 정신없이 삽질을 시작했다. 흙을 퍼 올려 봉분을 다시 다지고 있는데, 그때 물소리를 찢는 듯한 외침이 들렸다.
“어푸, 사사사람! 어푸, 사사살려!”
필동이 돌아보니 황톳물 급류 속에 노인 하나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곧장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급류는 거셌고, 흙탕물은 눈과 입을 막았다. 필동이는 물에 빠진 노인의 얼굴을 주먹으로 쳐 기절시킨 뒤 멱살을 움켜잡고 물살을 버텼다. 둘은 급류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떠오르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한 끝에, 가까스로 사지(死地)에서 빠져나왔다.
기운이 빠진 필동이는 개울가 뻘밭에 드러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노인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축 늘어진 채 그의 발치에 쓰러져 있었다. 얼마 뒤 노인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필동이는 그를 돌아볼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다시 아버지 묘터로 달려갔다. 관이 드러난 봉분을 수습하는 일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노인도 뒤따라왔다.
필동이가 봉분을 다듬고 흙을 다져 올리는 동안, 노인은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묘터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것은 **패철(佩鐵)**이었다. 풍수지관이 산세와 물길, 방위와 혈자리를 살필 때 쓰는 도구로, 오늘날의 나침반과 비슷하지만 단순히 방향만 재는 기구가 아니다. 어느 방향에서 산맥이 내려오고, 물길이 어떻게 감기며, 바람은 어떻게 드는지, 죽은 이를 묻을 자리가 생기를 받는 자리인지 아닌지를 살피는 데 쓰는 풍수의 눈이었다.
한참을 둘러본 노인이 필동이 옆에 와 앉았다.
“젊은이, 내 목숨을 살려줘서 고맙네.”
“어쩌다가 빠지셨습니까?”
“물에 살짝 잠긴 외나무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의 처지가 드러났다. 필동이는 천석꾼 부자 오 진사 집안의 일을 총괄하는 집사였고, 노인은 풍수지리와 관상을 보는 지관이었다.
노인은 다시 필동이 아버지의 묘를 돌아보더니 혀를 찼다.
“여기가 선친 묘터란 말인가. 끌끌끌.”
그 말에는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지금 이 자리는 빗물에 쉽게 허물어지는 자리였고, 죽은 이를 오래 편히 모실 만한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날 밤에도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삼경 무렵,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두 사람은 다시 필동의 선친 묘지에 다다랐다. 봉분을 파헤쳐 관을 꺼내고, 못질한 관 뚜껑을 열어 시신을 가마니에 넣었다. 빈 관은 다시 제자리에 묻고 흙을 덮어, 봉분은 겉보기에는 전과 다름없이 보이게 만들었다.
노인이 앞서고, 필동이는 아버지 시신이 담긴 가마니를 지게에 짊어지고 뒤를 따랐다. 개울을 따라 산골짜기 안으로 한참을 올라갔다. 비는 잦아들지 않았고, 밤길은 미끄러웠다. 얼마나 걸었을까.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즈음, 노인이 걸음을 멈추었다.
“다 왔네.”
거기에 말뚝이 꽂혀 있었다.
그 말뚝은 아무 데나 꽂아 둔 것이 아니었다. 지관이 낮에 패철을 들여다보며 여러 번 산세와 물길을 살핀 끝에, 진짜 혈자리를 잡고 표시해 둔 자리였다. 다시 말해, 그것은 단순한 나무토막이 아니라 패철이 가리킨 명당의 표지였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패철과 말뚝은 따로가 아니라 하나다. 패철이 자리를 찾고, 말뚝이 그 자리를 기억하게 한다.
노인은 말뚝을 뽑았다. 그리고 쉴 틈도 없이 그 자리를 허리춤 깊이까지 파게 했다. 필동이가 지게에서 가마니를 내려놓자, 두 사람은 그 시신을 그 자리에 묻었다. 흙을 덮고, 아까 떠냈던 풀을 다시 덮어 평지처럼 원상 복구해 놓았다. 누가 보아도 그곳에 막 무덤을 썼다고는 알 수 없을 만큼 감쪽같았다.
그러고 나서 노인은 뽑아 두었던 말뚝을 원래 자리보다 위쪽으로 열 걸음쯤 되는 곳에 다시 박았다.
바로 이 대목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원래 패철이 가리킨 자리는 필동 아버지가 묻힌 자리였다. 그러나 다음 날 김 참판 집안의 상여 행렬이 올 것이므로, 지관은 진짜 명당은 필동에게 내주고, 그보다 조금 위의 자리에 말뚝을 다시 박아 두었던 것이다. 그 말뚝은 이제 더 이상 ‘참 혈자리’의 표시가 아니라, 김 참판 집안을 이끌어 갈 표식이 되었다. 같은 말뚝이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
이튿날, 비가 그치고 아침해가 떠올랐다. 김 참판 선친의 상여 행렬이 만장기 물결을 이루며 개울을 따라 올라오다가 산골짜기로 꺾어 들어갔다. 어디쯤에서 김 참판의 숙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지관 어른, 이 자리가 맞소?”
노인은 패철을 꺼내 들었다. 그가 다시 패철을 본 것은 형식만이 아니었다. 지관으로서의 마지막 확인이었고, 동시에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굳히는 몸짓이기도 했다. 그는 패철을 들여다본 뒤 말뚝이 박힌 자리를 가리켰다.
“말뚝이 그대로 박혀 있잖소.”
그 한마디로 장지는 정해졌다. 땅을 파고 하관을 하고, 곡소리가 산골짜기를 메웠다. 상두꾼들의 “어어 달구야” 하는 소리가 점점 가늘어질수록 지관 노인의 하산 발걸음은 빨라졌다.
그 후 필동이는 오 진사네 집을 나와 지관 노인을 따라다니며 풍수지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노인은 백발이 성성해 당나귀를 타고 다녔고, 필동이는 어느덧 오십 줄에 접어들었다. 그날도 산세를 보다가 필동이가 웃으며 물었다.
“천하 명당자리에 선친을 묻었으니 내 인생 후반 팔자가 화악 펴진다 하셨지요. 그런데 아직도 이렇게 당나귀 고삐나 잡고 있으니….”
노인은 껄껄 웃었다.
“일간에 자네 아들이 어사화를 쓰고 자네를 찾을 걸세.”
필동이도 따라 웃었다.
“내게 무슨 아들이 있다고, 허허허.”
며칠 뒤, 정말로 백마를 탄 헌헌장부가 어사화를 쓰고 필동 앞에 나타났다. 그는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아버님, 소자 인사 올립니다.”
그제야 드러났다. 천하의 바람둥이 오 진사는 이 여자 저 여자에게서 자식을 여럿 두었는데, 본처의 세 아들 가운데 막내가 바로 필동의 핏줄이었다. 넓은 미간과 긴 인중이 꼭 닮아 있었다.
이 이야기는 겉으로는 풍수 이야기다. 패철이 나오고, 말뚝이 나오고, 명당이 나온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결국 사람 이야기다. 필동은 장마 속에서 아버지 묘를 걱정하며 달려간 사람이다. 효에서 출발한 그의 마음은 급류 속 노인을 외면하지 않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관은 그 은혜를 잊지 않았다. 패철로 찾은 명당을, 법대로라면 다른 이에게 돌아갈 자리를, 목숨을 건져 준 필동의 아버지에게 먼저 내주었다. 풍수의 법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사람의 마음이었다.
여기에서 한국인의 오래된 정서가 드러난다. 부모의 묘를 걱정하는 마음,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 받은 은혜를 끝내 갚고자 하는 마음이다. 효와 인정과 보은이 하나의 줄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뜻은 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람을 살리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선행은 계산 없이 이루어지지만 세상은 그것을 결국 기억한다는 믿음, 이것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통하는 인간 보편의 정신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끝내 들려주는 말은 단순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베푼 마음은 땅속에 묻히지 않는다.
패철이 명당을 찾는다 해도, 그 자리에 뜻을 부여하는 것은 끝내 사람의 마음이다.
선행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길을 돌아, 세월을 돌아, 결국 다시 사람에게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