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인간은 왜 묻는가
『질문과 인간』—
제1편 인간은 왜 묻는가
사람은 묻는다.
이 단순한 사실이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별한다.
짐승도 반응한다.
배고프면 먹고 위험하면 피한다.
그러나 그것은 질문이 아니다.
본능이다.
인간은 멈추어 선다.
그리고 묻는다.
왜 그런가.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나는 누구인가.
질문은 인간의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에 나타난다.
아이는 말을 배우면서 “왜?”라는 말을 가장 먼저 익힌다.
그 질문은 끝이 없다.
왜 비가 오는가.
왜 별이 빛나는가.
왜 사람은 늙는가.
왜 사람은 죽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려는 첫걸음이다.
이와 같은 물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 사유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 470?–399 BCE)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보았다.
그의 사상은 제자 플라톤(Plato, 427–347 BCE)이 남긴 『Apology어폴러지: 변명』에 기록되어 전해진다. 그 자리에서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디 언이그재민드 라이프 이즈 낫 워스 리빙: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이 말은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질문은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질문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길이다.
사람은 질문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운다.
그래서 인간의 문명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왜 별이 움직이는가라는 물음은 고대 천문 관측과 함께 자연의 질서를 탐구하게 만들었고,
왜 병이 생기는가라는 물음은 치료와 의학을 낳았다.
이와 같이 자연의 원인을 묻는 물음은 과학으로 이어졌고,
사람은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법과 제도로 이어졌다.
질문은 인간을 본능의 세계에서 끌어내어
이해와 성찰의 세계로 나아가게 했다.
오늘 우리는 또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인공지능 AI가 많은 일을 대신하는 시대이다.
정보를 찾는 일은 기계가 더 빠르고,
계산은 기계가 더 정확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다.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지식의 방향이 달라지고
문명의 길이 달라진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결국 질문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답을 통해서만 성장해 온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질문을 통해 성장해 온 존재이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으로 남아 있는 한
이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