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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조바르 Oct 10. 2021

인문학에서 배우는 리더십과 삶의 지혜"흔들리는 마흔"

10. 흔들리는 마흔,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40대 직장인들이 하나둘씩 삼겹살집으로 모여든다. 퇴근길 직장 동료와 소주 한잔. 하루 종일 힘들어도 이 시간을 위해 견뎠다. 오늘 상사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술이 한 순배 돌고 새로운 소주병이 비좁은 탁자 위를 비집고 자리를 차지한다. 이제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늘 하던 예전 영웅담이 반복된다. 지금의 나는 없고 과거의 영광만이 내 자존감을 세워준다. 혀가 조금씩 궤도이탈을 시작한다. 이즈음 신호가 온다. 화장실에서 묵직해진 아랫배를 비운다. 손을 씻으며 거울 속에 나를 본다.


 ‘너 이제 마흔이야! 계속 이렇게 살거니?’ 자리에 돌아오니 건배를 하잔다.


 "개 같은 내 인생, 먹고 죽자"

     

 40대가 흔들리고 있다. 거울을 보며 던지는 질문이 잦아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꿈꾸던 인생은 어디에 있는가?’ 이제 다시는 술을 안 마시겠다고 다짐도 한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이제 한 달 간격으로 되풀이되는 의식행사가 되었다.  

   

 “식사하세요. 콩나물국 끓여 놨어요.”

 “어, 그래 고마워.”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요. 당신이 아직 이팔청춘인지 알아요?”

 “......”     

 여기서 바로 대답하면 전쟁이 시작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안다. 아내가 한 번 더 물어보기를 기다린다.  

   

 “요즘, 회사에 무슨 일 있어요? 왜 그렇게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아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해야 한다. 결혼생활 10년 차 이상이면 깨닫게 되는 생존기술이다. 아내의 태도가 ‘화가 났다’에서 ‘걱정된다’로 태세가 전환되는 순간인 것이다.      


 “여보, 사실 요즘 많이 힘들어. 밑에서는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지, 위에서는 나보다 먼저 승진한 후배가 윗사람 행세를 하고. 부장 승진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고...”


 “그래도 그만 둘 생각은 말아요. 지금부터 퇴직 준비를 하면 돼요. 나도 이제 일거리를 찾아볼게요.”  

   

 아내의 말에 내 자존감이 고개를 숙인다. ‘아!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되었지?’ 그래도 같이 승진 못하고 있는 입사동기 K보다는 낫다. 그 집은 부부간 호칭이 ‘여보’에서 ‘인간아’로 바뀐 지 오래다. 늦게까지 술을 먹어도 어디냐고 문자 한 통 보내지도 않는단다. K는 이제 그 문자가 그립다고 했다. 그리고 ‘곧 이혼을 할 것 같다’며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불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뭔가 해야 한다는 내면의 울림은 있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 듯 회사에 도착했다. 답답한 마음에 건물 모퉁이에서 담배 한 대를 피웠다. 그리고 다시 잘해보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상무님이 같이 타셨다. 나를 쳐다본다. 니코틴의 역겨운 냄새를 저주하는 눈빛이다. ‘아! X발 아침부터 꼬이네.’ '내 인생이 이 모양 이 꼴로 된 게 무엇 때문일까?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에게 장미 빛 미래는 있는가?'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몇 년 전 직장인들의 생활을 자세하게 보여준 국민 드라마가 있었다. <미생>이라는 드라마였다. 위 이야기는 그 드라마를 조금 각색한 내 이야기다.

 40대는 퇴직은 쉬워도 이직은 어렵다. 화난다고 회사를 퇴직해서 창업하면 열에 아홉은 망한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길이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정답을 말해주는 사람도 없다. 나 스스로 찾아야 한다. 어쩌면 40대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나를 찾는 것과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다.       


 나는 20년간 장교로 복무했다. 일반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군인이라는 직업도 마흔이 되면 흔들린다. 승진을 하지 못하면 계급정년에 걸려서 전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마흔이 되던 해에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선택했다. ‘군인이라면 전쟁을 경험해 봐야  한다’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승진 경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3개월간의 파병 준비를 마치고 350여 명의 전우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으로 날아갔다.


 내가 경험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매일 전투가 벌어지는 지옥의 현장이었다. 다행히 한국군은 비교적 교전이 적은 동부지역으로 파병되었다. 안전한 지역이라고 했지만 사실 전쟁하는 나라에 안전한 곳은 없었다.      

 한국군 파병부대가 ‘바그람 미군 공군기지’ 안에 있을 때는 2~3일에 한 번은 로켓 공격을 받았다. 비상 사이렌이 울리면 모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신속하게 콘크리트 대피호 안으로 피했다. 잠시 후 ‘슈우웅 쾅 쾅’ 벼락같은 폭음과 함께 땅의 진동이 느껴진다. ‘삐뽀 삐뽀’ 이번에는 구급차가 출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사상자가 없기를...’ 대피호 안에서 동맹군 인트라넷 망으로 현재 상황을 검색한다. ‘기지 동쪽 ㅇㅇ 동맹군 숙소에 2발, 사상자 3명’이라는 내용이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온다. 누군가의 인생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고 있다. 오늘도 내가 그 누군가가 되지 않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마흔, 흔들리는 나이에 나는 가장 극한 상황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방황하는 내 영혼을 전쟁이라는 틀에 넣고 흔들림의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은 새로운 고통으로 나를 흔들었다. 삶과 죽음, 인생의 성공과 실패, 극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본성, 살고 싶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내 일기장에는 이런 표현들만 늘어났다.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인문고전 책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숙소에 돌아와서 책을 읽었다. 독서를 방해하는 것은 딱 두 가지였다. 탈레반이 공격하거나, 전갈이 내 눈앞에서 꼬리를 치켜들고 지나가거나.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책 읽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 전쟁터다.       

          

 나는 인문고전 책을 읽으며 인생의 의미를 깊이 생각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는 이르지 못하는 경지였다. 그리고 점점 더 독서에 빠져들었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 전쟁을 만나면 깨달음의 경지가 심오해진다. 사랑은 더욱 애틋하게 다가오고, 역사의 교훈은 생존으로 느끼며, 다른 이의 주검을 보면 만사 제쳐두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철학을 배우게 된다.

 나의 흔들리는 마흔은 인문고전이라는 스승을 만나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지금 나는 어디에 서있는가?’라는 질문에 조금씩 답을 찾아가게 되었다.   

    

 마흔, 인생의 절반쯤에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나이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있는가? 그 누구도 나의 인생에 대해 말해줄 수 없다. 오직 나만이 해석하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제대로 해야 한다. 그냥 아무 생각이나 하면 성찰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발전도 없고 성장도 없다. 그래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늘 비슷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나는 전쟁터에서 인생을 배웠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에 대해 느꼈다. 그리고 인문고전이 나를 성장시키는 최상의 공부임을 알게 되었다.


                                                         작가 송은섭의 [마흔, 인문고전에서 두 번째 인생을 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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