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의 사랑(3) "두 사람이 함께 추는 춤"
50에 나를 찾는 아내의 도전, 그리고 남편이 함께 추는 춤
“친구야, 집사람이 부동산 경매를 배우고 있는데 돈 번다고 난리다.”
“그래? 말하는 네 표정보니까 싫은 건 아닌거 같은데?”
“솔직히 싫지는 않아. 그렇다고 좋다고 말하기도 뭐하고. 아무튼 기분이 묘하더라구.”
C는 묘한 기분을 그렇게 표정으로 말했다. 50대 남자의 어깨에는 두 줄의 가방 끈이 있다. 한 줄은 자아성취의 끈이고 다른 한 줄은 가정이라는 끈이다. 두 줄이 서로 팽팽하게 길이가 맞아야 멀리가도 힘들지 않다. 한쪽에 치우치거나 길이가 다르면 계속 삐걱거리며 힘들게 갈 수밖에 없다. 가끔은 한쪽 끈을 뻬서 외줄로 메고 가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힘겨운 두 줄의 가방끈이 메여 있는 한 혼자 짊어지고 가는 50대남은 그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C는 지금껏 무거운 가방을 혼자 짊어지고 가야한다고 배웠다. 그게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배우자의 경제활동 선언은 인생의 가치관에 작은 변화의 물결이 일어난것과 같았다. C는 겉으로는 아닌척 했지만 아내가 돈 벌겠다고 하니 조금은 어깨가 가벼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묘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C의 아내 K는 C와 대학 캠퍼스 커플이었다. C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해서 첫눈에 반한 후배였다. 둘은 연극동아리에서 만났다. C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했고 K는 4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C가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아버지의 암 진단 비보가 날아들었다. C의 아버지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수술도 거부하고 아들이 빨리 결혼 하기를 원하셨다. 죽기전에 며느리는 봐야 눈을 감을 수 있겠다고 하셨다. C는 K를 설득했다. K의 집에서는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인물 좋고 성품 좋고 대기업에 다니는 사위’라는 조건이 나쁘지는 않다고 결론 내리고 결혼을 허락했다. K는 그날부터 전업주부가 되었다. 마지막 가시는 시아버지 병 수발을 했고, 홀로 남으신 시어머니를 모시며 두 아이를 길렀다. 대학 4년 동안 꿈꿨던 ‘커리어우먼’의 길은 아예 시작도 못했다. 대학 졸업장은 마치 면허증을 따고 장롱속에 넣어만 두는 ‘장농 면허증’과 같았다.
K는 50이 되자 생각이 많아졌다. C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홀어머니의 며느리로, 친정집에서는 막내딸로 살아온 인생에 자기 이름 석자는 딱 24년만 불렸다. 26년은 자기 이름보다는 ‘C의 처’, ‘승윤/승희 엄마’, ‘애미야’, ‘막내야’로 불렸다. 어떤 날은 ‘내 이름이 뭐였나?’, ‘나에게 이름이 있기는 한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학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승승장구하는 대학 동기들을 보면 마냥 부럽기만 했다. 졸업할 때는 C선배한테 시집간다고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그녀였다. 아이낳고 기르면서 아이들에게 집중했던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버렸다. 어느 날인가 남편 출근하고 아이들 학교가고 집이 조용해진 날 창 밖을 바라보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그렇게 시작한 눈물이 꺼억꺼억 서럽게 소리내는 대성통곡으로 바뀌었다. 아무 이유도 없었다. 그냥 서러웠다. 내 인생이 불쌍했다. 그녀가 쏟아낸 것은 눈물이 아니라 그녀가 버려야 했던, 그녀가 희생해야 했던 그 모든 것이었다. 눈물은 카타르시스라고 했던가? 비어낸 공간에 새로운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더 나이들기 전에 뭔가 해보자. 아이들도 모두 컸으니까 내 손길이 필요한 나이는 지났어. 지금 뭔가를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아무것도 못할거야!’
K는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뭔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자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해서 돈을 벌지? 큰 돈을 빨리 벌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서점에 들러서 돈 버는 방법에 관한 책을 살폈다. ‘부동산 경매’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선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그래 이 책이야. 부동산 경매를 해야겠어!’
여의도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갈비 익는 연기와 함께 50대남들의 인생이야기도 익어간다.
C와 나, 그리고 J. 세 명은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C가 아내의 새로운 결심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J가 숨겨뒀던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난 말이야 C가 좀 더 생각해 보기를 바래. 제수씨가 돈을 벌겠다는 건 좋은 생각인데 뭘 해서 돈을 버느냐가 중요하거든. 사실 우리 집사람도 보험을 하겠다고 해서 내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몰래 시작했더라고. 그런데 새로운 세상을 접하니까 신이 난거야. 딴 세상에 사는 기분이었던 거지. 그러면서 조금씩 일탈이 이어지더니 결국에는 바람이 났어. 딱히 내가 잘했다는 게 아니고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으니까 그 사람이 바람에 흔들렸겠지. 지금은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 지금 이 나이에 이혼하기도 뭐하고 같이 살기도 뭐하고 그래서 그냥 별거하고 살아.”
J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착하던 제수씨가 바람이 났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럼 아이들은 어떡하고, 한 가정이 엄마의 새로운 도전에 박살이 났단 말인가? 무엇부터 잘못된 것일까? C와 나는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다른 주제로 화제를 전환시키는 것 밖에 달리 길이 없었다. 늘 그랬듯이 깊어가는 한숨과 꽉 막힌 가슴을 소주잔으로 계속 쓸어내려서 무뎌지게 만드는 방법이 최고였다.
50대 부부에게 필요한 건 뭘까? 이미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나이라지만 부부간에 꼭 필요한 뭔가가 있어야 하는 데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던 순간 지난 달에 진행했던 ‘인문학이 묻고 예술이 답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부부 국악인의 춤 사위가 생각났다. 부부가 함께 추는 춤이었다. 두 사람이 추는 춤에는 주고 받는 대화가 있었다. 얼굴 표정과 손동작, 다리 동작 들은 리듬에 맞춰서 마치 두 사람이 대화를 하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 공연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깨달음이 밀려왔다. 50대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부부는 두 사람이 추는 춤과 같다. 무대 위에 두 사람이 올라가서 춤을 추는데 각자 자기가 원하는 춤만 추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게 출 바에는 혼자 추는 춤을 추어야 한다. 두 사람이 주고 받으면서 리듬을 타는 춤은 보는이도 그렇거니와 춤을 추는 사람도 신이 나서 추게 된다.
“이렇게 한바탕 춤을 추고 나면 부부간에 쌓였던 스트레스도 모두 풀 수 있어서 좋아요. 두 사람이 추는 춤은 서로 맞춰줄 수 있을 때 훌륭한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는거거든요.”
아직도 두 부부가 남긴말이 귓가에 생생하다. 그때는 ‘아, 그렇구나. 참 좋은 말이다.’정도로만 공감했지만 지금은 그 원리가 제대로 느껴진다. 그리고 작은 생각의 정리를 할 수 있었다.
‘50대에 아내가 경제활동을 하겠다고 하면 그냥 동의하는 수준에서 머물지 말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줘라. 부동산 경매를 하겠다고 하면 경매 학원을 알아보고 같이 다니거나 유튜브 동영상을 추천해주는 등 함께 추는 춤이라는 걸 행동으로 보여줘라. 아내가 경제활동을 하겠다는 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하나는 말 그대로 ‘돈을 벌겠다’는 것이고, 다른 중요한 하나는 ‘자신을 찾고싶다’는 의미다. 그럴때는 ‘승윤엄마, 승희 엄마’ 대신에 ‘김지영, 지영아, 지영씨’라고 이름을 불러줘라.’
나는 C에게 내 생각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C에게 카톡이 왔다.
‘나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 그래서 오늘부터 이름을 불러주고 아내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도움을 주기로 했어. 내가 아내에게 이런 내 생각을 정리해서 카톡으로 보냈더니 전화가 왔어. 그리고 한참 동안 울먹이더니 고맙다고 하더라.’
나는 C가 K에게 보낸 카톡문자를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이 보내왔다.
“사랑하는 아내 김지영의 새로운 도전을 축하해. 당신은 할 수 있어. 내가 뭐든지 도와줄게. 부부는 두 사람이 추는 춤이래. 이제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겠어. 그동안 무심했던 것도 미안하고 당신 이름 없이 살게 한 것도 미안해. 이제 50의 바다에서는 당신 이름으로 살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게. 고마운 내 아내 김지영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