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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조바르 Nov 17. 2021

50의 사랑 (2) "갱년기 남자의 우울한 성"

갱년기 남자의 우울한 성

"여보, 우리 부부관계 안 한 지 얼마나 됐는지 알아?"

화장대 앞에 앉아 영양크림을 얼굴에 바르는 지숙을 보며 여명이 물었다. 지숙은 귀찮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뭘,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요. 쓸데없는 생각 말고 잠이나 자요."

"그게 아니라, 내가 갱년기가 온 거 같은데... 갱년기에 정기적인 성생활이 좋다고 하더라고."

여명은 며칠 전부터 이 말을 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어디서 그런 소리만 듣고 다녀요. 정신없이 바빠봐요. 갱년기가 어딨어요? 하여튼 50만 넘으면 개가 된다더니..."

"뭐라고, 개? 당신 지금 나보고 개라고 했어? 부부관계가 필요하다는데 개? 어떻게 개에 비유하냐? 평생 죽을 때까지 너랑 하나 봐라! 그 말 후회하게 될 거야."

"아이고 후회? 여자는 그런 거 안 해도 살아, 죽을 때까지 안 해도 되네요. 흥."


여명과 지숙은 둘 다 50대 중반에 갱년기를 앓고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화만 하면 분노를 기본 베이스로 깔고 말한다. 늘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한다고 불만이다. 대화도 항상 이런 식이다. 여명은 지숙의 말에 분노가 끓어오른다. 반려견 해피가 둘의 싸움을 감지했는지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다.


"해피야, 드디어 내가 너와 같은 종이 됐다. 제기랄. 다시는 말하나 봐라. 말만 섞으면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니. 아예 대화를 말아야지. 도대체가 수준 이하라 말이 안 통해."


여명의 혼잣말을 들은 지숙은 메가톤급 분노를 장착한다. 담배를 들고 안방 문을 열고 나가려는 여명의 뒤통수에 대고 충격포를 발사한다.

"어째 생각하는 게 늘 그 모양이야, 지겨워 정말. 그러니 회사에서 승진도 못하고 만년 부장이나 하고 있지."

순간 지숙은 '아차, 이 말은 하지 말걸.'이라며 속으로 후회했다.

"뭐라고? 당신 말 다했어?"

지숙은 남편의 분노 게이지가 천장을 뚫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조금 톤을 낮춰서 꼬리를 내린 어투로 말했다.

"아니, 당신이 하도 내 맘은 몰라주고 이기적인 생각만 하니까 내가 그만 화가 나서 그런 거지. 미안해요. 그 말은 안 했어야 했는데..."


이미 늦었다. 여명의 가슴은 지숙의 충격포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긴 한숨을 쉬고 할 말을 잊어버린 채 현관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 나갔다. 지숙은 그런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심했나? 이 주둥아리가 항상 문제야 문제.'라며 자책했다.


여명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봤다.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귀 두 개. 사람인데 왜 개의 모습으로 그려질까? 왜 가장 큰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 받는 걸까?


아파트 단지 구석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물었다. 한 모금 길게 빨아들인 후 내쉬었다. 벌렁거리던 심장이 조금은 안정 박동수로 바뀌는 거 같았다. 연거푸 두세 번 연기를 빨아들이고 내쉬었다. 혈관을 타고 니코틴이 뇌로 올라가면서 몽롱한 상태가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 안정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느닷없이 2층 베란다 창문을 통해 욕설이 들려왔다.


"어떤 개새끼가 몰지각하게 담배를 피우고 지랄이야. 저런 개새끼는 폐암 걸려서 두 달안에 급사를 해야 돼. 에이 더러운 개새끼. 퉤 퉤."


 베란다 문을 '쾅'하며 닫는 소리가 들렸다. 여명은 어이가 없었다.

'아, 내 팔자가 왜 이렇게 됐지? 집에서는 마누라가 개라고 하고, 밖에 나오니 담배 피운다고 개새끼라고 하고. 와 진짜 개 같은 하루다.'


중년 남성의 갱년기는 사실 여성보다 노출이 쉽게 되지 않는다. 남성 갱년기 비율이 적어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노출시키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오죽 못났으면 그럴까?' 이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에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중년 여성의 갱년기 못지않게 남성의 갱년기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갱년기 여성이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면서 해소를 한다면 남성은 술이나 운동으로 푸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성적인 불만은 부부가 서로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외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성도 마찬가지겠지만 남성의 경우 주기적인 성생활만으로도 자신감이 높아진다.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갱년기 극복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중년 남성의 갱년기는 가족의 도움이 절실하다. 직장에서는 퇴직 압박을, 가정에서는 자녀 양육과 결혼, 노후대비 스트레스까지 어깨를 짓누른다. 이럴 때 가족의 응원은 큰 힘이 된다. 남편이 갱년기로 힘들어한다면 부부관계에 대한 자연스러운 대화로 활기를 불어넣어 주자. 어쩌면 아내 자신을 위한 선순환이라고 생각해보자. 남편이 용기 내어 부부관계를 요구하면 제발 개취급 말고 그저 치료라고 생각하며 받아주면 어떨까?


TV 광고를 보면 여성의 갱년기만 다루고 있다. 갱년기 약도 여성만을 위해 광고한다. 이제 50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남성의 갱년기에도 관심이 필요하다. 그게 진정한 양성평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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