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신의 지팡이(1) "상하이 빨간토끼의 유혹"

제1화 상하이 Red Rabbit

by 작가 조바르

1

이제 막 죄를 지으려는 사람에게 상하이 푸동공항 활주로는 양심까지 착륙을 허용하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팔다리를 잡아끄는 힘이 사라진 순간부터 이미 악마의 유혹이 시작되었다. 여명은 이 순간을 새로운 도전으로 애써 포장했다.

‘까짓것 한 번뿐인 인생인데 멋지게 살아야지’

누군가 쳐다보고 있는 느낌에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스마트폰 갤러리에 저장된 린다의 사진과 호텔 주소를 봤다. 사진 속 린다는 ‘참 예쁘다.’ 말고는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미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여명에게 접근했을 때 그는 넋을 잃었었다.

‘아, 이런 미인과 연애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가슴이 부풀어 올라 심호흡 세 번으로 간신히 눌렀다.

‘정신 차려, 송 여명. 넌 지금 세기의 비즈니스를 하러 온 거야!’

1시간 30분! 여명은 하늘에 떠 있는 동안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푸동공항 밖으로 나오자 한국과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택시를 탈까? 자기 부상 열차를 탈까? 망설였다. 그를 따라붙은 사람이 있다면 최대한 학술회에 참가하는 학자의 모습으로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자기 부상 열차를 탔다. 431km/h! 여명은 엄청난 속도에 놀랐다. 하지만 ‘신의 지팡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익숙해진 속도감에 비하면 페라리와 시골 경운기 수준의 차이였다.

상하이 포시즌 호텔 로비는 한가해 보였다. 중국 항공우주 학술회의에서 예약해 준 룸을 확인하고 36층으로 올라갔다. 5성급 호텔답게 엘리베이터는 황금색으로 치장하고 바닥은 거울처럼 깨끗했다. 1박 숙박료가 5000위안(한화 922,500원)인데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침실 커튼을 열었다. 창밖으로 상하이 도시가 펼쳐졌다. 마른침을 삼키며 물을 찾았다. 문득 5년 전 뉴스가 생각났다. 걸레로 컵을 닦고 수건으로 변기 닦은 후 다시 제자리에 놓는 위생 불량 5성급 호텔! 그중에 이 호텔의 이름도 있었던가?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세상. 호텔은 그 작은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기야 나도 마찬가지지. 겉으로는 애국자니까. 그래도 이번 결정에 후회는 안 해’

여명은 다시 한번 자신의 결정을 잘한 것이라고 스스로 세뇌했다.


2

송 여명. 1982년생. 카이스트 출신 공학박사. 파동 충격파 분야 세계 일인자. 그는 한국 국방과학연구소 신무기개발팀 파동 충격파 담당 연구원이었다. 2년 전 영끌과 빚투로 비트코인에 올인했다가 폭망하는 바람에 아내와 이혼했다. 빚 독촉과 가정 파탄의 충격으로 연구 활동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그는 연구소에서도 쫓겨났다. 여기저기 재취업을 시도한 끝에 KL 그룹 무기 사업부에 출근하게 되었다.


한 달 전이었다. 바로 그날이 합격통지를 받고 임원 면담을 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한 여자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저기 잠깐만요. 송 여명 씨 맞으시죠?”

“절 부르셨나요? 누구신지….”

여명은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자기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송 여명 씨 맞으시죠.”

여자는 재차 여명의 이름을 확인했다.

“네. 제가 송 여명입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잘 찾아왔네요. 반갑습니다. 저는 린다 차라고 합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가느다란 손을 내밀었다.

“아, 네”

악수를 청하는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지난 2년간 여자의 손을 잡아본 적이 없었던 여명은 어처구니 없게도 가슴이 뛰었다.

“저는 중국 항공우주 학술포럼의 대외협력국장 린다 차입니다. 다음 달에 포럼이 있는데 송 여명 선생님을 초대하고 싶어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거기서 왜 저를 초대하죠? 저는 항공우주 분야가 아닌데요?”

그녀는 명함과 포럼 브로셔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 제 명함과 포럼 브로셔인데요. 보시고 시간 되실 때 연락 주세요. 자세한 건 그때 다시 말씀드릴게요. 오늘 갑자기 이렇게 찾아봬서 죄송해요. 꼭 연락 주세요. 기다릴게요.”

“네. 그러죠.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만날 때 자세하게 이야기해요.”

그녀는 다시 한번 악수를 청한 후 기다리는 차로 걸어갔다. 벤츠 최고급 모델이었다. 기사가 나와서 차 문을 열어주더니 곧장 출발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여명은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집으로 들어가서 브로셔와 명함을 번갈아 보았다. 브로셔를 보던 여명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중국 항공우주 학술포럼 참가자로 초대되신 분은 여행경비 일체와 학술 자문료를 지급합니다.’

비행기 왕복 티켓, 상하이 풍동 5성급 호텔 VIP룸, 학술 자문료 1억 지급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명은 다시 한번 읽어봤다. 정확하게 한화로 1억이었다. ‘발표자료 준비는 초대장을 전달해준 대외협력국장 린다 차에게 연락 바랍니다. 친절하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여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항공 우주학이 아니라 파동학 박사인데 왜 이런 초대장을 보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 임원 면담과 차후 연구 분야 설명 등으로 너무 피곤해서 씻는 것도 잊고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웠다. ‘린다 차, 린다 차, 린다… 차….’ 어느새 잠이 들었다.


3

여명이 커피숍에 앉아있다. 린다 차의 얼굴을 떠올리며 학술포럼 브로셔를 다시 읽었다.

‘1억이라. 1억이면 일단 남은 빚의 절반을 갚을 수 있다. 그리고 중국 여행까지….’

커피숍으로 매력적인 여자가 들어왔다. 여명은 그가 린다 차임을 금방 알아챘다. 키 168㎝에 몸무게 52kg 정도의 건강미 넘치는 미인이 살짝 미소를 머금고 여명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 블라우스 왼쪽 가슴에는 빨간색 토끼 문양의 작은 브릿지가 달려있었다. 여명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자리에서 어설프게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린다 차가 유쾌한 목소리로 먼저 악수를 청했다. 여명은 첫 만남에서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느낌이 떠올랐다. 수줍게 그녀와 악수를 했다.

“네. 어서 오세요. 브로셔를 읽고 궁금한 점이 많았어요.”

“참, 급하시네요. 여명 씨. 오늘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이야기해요. 우리.”

그녀는 비즈니스 모드가 아니라 연애 모드를 장착하고 나온 것 같았다.

“아. 네. 그렇군요. 커피 드시겠어요? 이 집이 모카커피하고 치즈케이크가 맛있어요.”

“어머 제가 모카커피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셨을까요? 저 치즈케이크도 엄청 좋아해요.”

린다 차는 오래간만에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났다며 여느 수다쟁이처럼 귀엽게 말했다.

“우선, 제 소개를 정식으로 다시 할게요. 저는 린다 차이고요. 홍콩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무역업을 하시고요. 어머니는 세관 공무원이세요. 저는 홍콩과학기술대학교를 졸업하고 상하이에 있는 중국 항공우주 학술포럼에서 일하고 있어요. 저희 포럼은 중국 정부에서 지원하는 포럼이고요. 이건 비밀인데요 ‘천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요”

“천인 프로젝트요? 그게 뭐예요?”

린다 차는 자세를 다시 바로잡으며 상체를 여명 쪽으로 기울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건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돼요. 약속해요.”

그녀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여명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마법에 걸린 아이처럼 새끼손가락 약속을 했다. 그는 마치 연인들이 둘만 아는 비밀을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천인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천명의 유명인사를 우리 학술포럼에 참여시키는 계획이에요. 여명 씨는 그 천명 중에 한 명으로 선택되신 거고요. 그래서 모든 여행경비와 발표 지원금을 드리는 거예요.”

여명은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럼 제가 그 큰 지원금을 받는 대가로 뭘 해야 하나요?”

“별로 어려운 건 없어요. 여명 씨가 지금까지 연구한 자료들을 발표하시면 되니까요. 음, 아마 국가 비밀로 지정된 내용 같은 건 자료를 준비하시기가 어려울 거예요.”

“그렇죠. 그건 비밀로 지정되어있어서 자료를 만들기도 어렵고, 기존에 만들어놓은 자료를 외부로 유출할 수도 없어요.”

“네. 알고 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학술포럼에서 기본적인 개념 발표 정도만 하시고요. 자세한 건 분임토의를 따로 하는데 그때 말로 설명하시면 되니까요.”

“그래도 그건 산업스파이 죄에 해당할걸요. 국정원에 금방 들킬 거 같은데요.”

린다 차는 안심해도 된다는 듯이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USB나 노트북에 자료를 가지고 오시면 의심을 하겠죠.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여명 씨 머릿속에 있는데 뭐가 문제죠. 포럼을 마치고 분임토의할 때 여명 씨가 연구한 결과들을 얼마나 전달해주느냐에 따라 추가 지원금으로 10억까지 드릴 수 있어요. 원하신다면 우리 학술 포럼에 취업하실 수도 있고요. 연봉은 기본 2억부터 시작하니까 괜찮은 조건이죠.”

“제가 KL 그룹 연구소에 취업한 지 얼마 안돼서 일단 포럼 초청장을 다시 보내주시면 회사에 제출하고 휴가를 내 볼게요.”

여명은 ‘지원금 10억, 연봉 2억’을 생각하니 나쁜 짓인지 알면서도 빚 독촉에 시달리는 지금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4

상하이 포시즌 호텔 36층 VIP 룸 101호. 침실에 있는 침대 옆에 영국 황실에서 사용하는 침대라고 쓰여있다. 사각기둥에 레이스를 달아놓아 마치 영국 여왕이 잠을 자는 곳처럼 느껴졌다. 응접실에는 고급 엔틱 가죽 소파와 황금색 띠를 두른 탁자, 전기로 불을 피우는 벽난로까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여명이 제일 마음에 든 것은 황금 욕조였다. 욕조에서 창밖으로 펼쳐진 상하이 도심을 바라보며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여명은 자신이 마치 성공한 사업가가 된 것 같았다. 어느새 온몸이 노곤해졌다.


한껏 성공한 사업가 기분을 내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렸다. 린다였다.

“린다.”

“여명 씨, 호텔에 도착하셨죠?”

“네. 도착해서 쉬고 있어요.”

“네. 저도 다 와 가요. 10분 후에 호텔로 갈게요.”

“밖에서 안 만나고 여기서 만난다고요?”

“호호호, 걱정 마세요. 해치지는 않을테니까요.”

“아, 네. 알겠습니다. 기다릴게요.”

“여명 씨, 조금 있다가 봐요.”

여명은 지난 2년간 여자를 품어본 기억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린다가 호텔로 온다고 하니까 어딘가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차, 10분 후에 도착한다고 했지, 얼른 준비해야겠다.’ 여명은 젖은 몸을 닦아내고 슈트로 갈아입었다. 짐이랄 것도 없지만 자질구레한 것들은 모두 여행용 가방 안으로 쓸어 넣었다. 그리고 사업가 모드로 변신해서 ‘비즈니스를 어떻게 이야기할까?’라고 생각하면서 응접실을 왔다 갔다 서성거렸다.

‘딩동’ 벨이 울렸다. 여명은 단정하게 옷매무새를 다지고 문을 열어주었다. 린다가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하며 들어왔다.

“여명 씨, 많이 보고 싶었어요.”

린다는 여명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 안으며 포옹을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여명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린다. 진정해요. 내가 그렇게 반가워요?”

“네. 그렇고 말고요. 제가 여명 씨를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사실 일도 일이지만 상하이로 돌아온 후로 여명 씨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제가 여명 씨에게 빠진 거 같아요. 어쩔 거예요? 나쁜 사람.”

여명은 린다의 갑작스러운 고백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육탄돌격을 거부할 마음은 없었다.

“사실 나도 린다가 너무 그리웠어요. 첫 만남 이후로 한 번도 잊어본 적 없어요.”

둘의 눈빛은 마치 이글거리는 태양과 같았다. 금세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했다.

“키스해 줘요.”

여명은 그녀의 빨간 입술을 벌려 그의 혀를 넣으며 따뜻한 촉감과 함께 두 마리 용이 엉켜서 춤을 추듯 비볐다. 린다의 가느다란 팔이 여명의 목을 감싸 안았다. 여명의 오른손은 린다의 등을 안으로 당겨서 가슴을 밀착시키고 왼손은 잘록한 허리를 감싸며 엉덩이를 밀착시켰다. 그렇게 둘은 그 자세를 유지하며 옆걸음과 뒷걸음을 반복하면서 침대로 갔다. 입술과 혀는 떨어지지 않은 채 서로 옷을 벗겨 주었다. 마지막 남은 속옷이 드러나면서 둘은 간신히 입술을 떼고 마주 보았다. 격정적인 몸짓이 잠깐 멈추자 더 큰 호흡이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실오라기 하나 없는 상태로 부드럽고 리듬감 있게 하나가 되었다. 여명은 뭐가 뭔지 몰랐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매력적인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화산이 뜨거운 용암을 분출한 후 휴식에 들어가듯 둘은 힘껏 껴안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여명은 꿈속에서 그녀의 가슴에 새겨진 빨간 토끼 문신을 보았다. 두 번째 만남에서 블라우스에 달려있던 빨간 토끼 브리지와 같은 문양이었다. ‘린다는 빨간 토끼를 좋아하네….’


여명의 스마트폰 벨소리가 울렸다. 여명은 폰을 찾아 눈을 부비며 발신자를 보았다. 린다였다.

'아 x발, 꿈이었구나! 그럼 그렇지.'

여명은 꿈속의 린다와 현실의 린다를 구분하는 경계선 어디쯤에서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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