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부재
한 때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생각"이었다.
생각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어떻게든 알려주려 애쓰면서 오랜 시간 동안 해결하고 싶은 관심거리였다.
그 덕분에 [생각의 탄생], [생각에 관한 생각],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생각을 생각한다],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생각"이 들어간 책들을 진중하게 읽었지만,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단어이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한 "악의 평범성"을 살펴보면,
그 악이라는 것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사유의 불능성', '사유의 부재'(어리석음이 아닌)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생각이라는 특권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인류 악행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사유"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삶의 현장에서 생각하고 궁리하여 개념과 구성에 대해 판단하는 인간의 지적 작용을 할 줄 알아야 이유를 깨우쳐서 대상을 분별하게 되고, 그래야 올바르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어디에서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가르쳐주지도 않는 "생각"을 생각하다 보니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앞으로의 시대에는 인간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생각이 없으면 정말 큰일이 나겠다는 우려가 커진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노출되는 릴스와 쇼츠들이 생각과 사유를 대신하고,
타인의 말이 자신의 생각과 언어로 채택되어 지배당하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그것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의 고찰과 분별의 과정이 삭제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들이 제공하는 어마어마한 정보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게 되면서
편향되고 무분별한 생각의 늪으로 빠져들어갈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학문으로 또는 과목으로 이 "생각"과 "사유"를 교육한다면 그것은 "철학"이 될 것 같다.
일상적인 생각을 경험하면서
여러 분야에서 사유의 소재들을 다채롭게 접해보고
동일한 현상을 각기 다른 입장에서 고찰해 보고
깊이 있는 철학적 이론도 공부하면서
통찰력을 기르고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는 기회들이 많아져야 한다.
이런 교육이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것인가?
실용적이고 현실을 반영한 교과목들이 발 빠르게 개설되지만,
사유에 대한 근본적인 이 교육은 정녕 설자리가 없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