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과 루비콘강 10

by 성일만


루비콘 강


리더의 자질은 타고난 것이다.

가르친다고 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


로마군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특히 카이사르는 이 전쟁에서 패하면 모든 것을 잃을 상황이었다. 권력도 명예도 지지자들도 모두 그를 떠나갈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거짓말처럼 로마군 기병대가 적의 배후에 나타났다.

카이사르가 미리 준비해둔 비책이었다. 기병대는 갈리아 군의 후미를 쳤다. 가장 약한 곳을 두들긴 것이다. 꼬리 부문의 동요는 전군으로 번졌다. 처음으로 갈리아 군에 술렁거림이 일어났다.

로마군은 원래 지구전에 강했다. 뛰어난 조직력을 바탕으로 초반 열세를 뒤집고 역전승하는 사례가 많았다. 마키아벨리의 ‘정략론’에 따르면 로마군의 힘은 규율에서 나왔다. 로마 병사들은 지휘관의 명령 없이는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았다.

용맹한 갈리아 군은 아쉽게도 규율이 없었다. 그런 탓에 초반에는 큰 힘을 발휘했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갈리아 전쟁 1500년 후 지략가 마키아벨리가 분석한 이날 전투의 승패원인이다.

마키아벨리의 지적대로 갈리아 군은 버티는 힘이 약했다. 결국 먼저 무너지고 말았다. 초반엔 갈리아 군의 완연한 우세였다. 로마군은 위태위태했지만 끝까지 버텨냈다. 그런 다음 기병대의 카운트 펀치 한 방으로 갈리아 진영을 무너뜨렸다.

전세는 역전됐다. 베르킨게토릭스는 군사를 이끌고 성안으로 달아났다. 그날 성안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며 밤을 보냈을까. 아마도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대체 30만 대 5만의 싸움에서 왜 우리가 졌단 말인가. 도대체 카이사르라는 저 인간은 누구인가. 왜 하늘은 나를 이 세상에 보내고, 또 카이사르를 보냈단 말인가. 제갈공명을 두고 뱉은 주유의 탄식 같은 넋두리를 해댔을 것이다. 다음 날 베르킨게토릭스는 남은 5만 여 부족들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항복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만화 아스테릭스(Astérix)의 주인공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적 있다. 갈리아 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갖게 해 오늘 날 프랑스를 있게 만든 영웅이다.

명(明)이 있으면 암(暗)도 있기 마련이다. 제국의 확장은 짙은 그늘을 낳았다. 로마 시민들의 빈부 차이는 우려할 정도로 커졌다. 군 복무로 인한 공백과 밀의 수입으로 소규모 자작농들의 파산이 늘어났다. 로마로 유입되는 빈곤층의 증가로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국가적 부담이 가중됐다.

오래 전 호민관 그라쿠스는 원로원의 승인 없이 국가의 땅을 로마인에게 재분배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그라쿠스는 아프리카누스의 외손자였다. 평민들은 당연히 그라쿠스의 개혁을 지지했다.

하지만 그에 반대하는 원로원의원들은 테러단을 조직하여 그라쿠스와 그의 동료들을 살해했다. 로마 공화정 이래 시내에서 발생한 첫 번째 유혈사태였다. 이후 100년에 걸쳐 로마는 폭력이 지배하는 참혹한 시절을 겪게 된다.

그의 동생 가이우스는 형의 뒤를 이어 시민권 개혁에 나섰다가 원로원에 의해 ‘최종 권고’라는 비상조치를 당했다. 나중에 카이사르를 옭아맨 무시무시한 법률이다. 가이우스는 로마 시내 테베레 근처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로마는 평민파와 귀족파로 나누어져 치열하게 싸워왔다. 마리우스와 술라로 대표되는 양측은 살생부까지 작성하며 상대를 무차별 살상했다. 마침내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에 의한 또 한 번의 로마인끼리 전쟁을 예고했다.

원로원에게 카이사르는 줄곧 눈엣가시였다. 그들은 카이사르를 무너뜨리기 위한 작업을 은밀히 진행시켜 왔다. 그들이 채용한 방법은 두 마리 호랑이 사이를 갈라놓는 이간책이었다.

로마에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라는 두 호랑이가 있었다. 그들 둘을 합쳐 놓으면 누구도 감당할 수 없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상대를 무는 쪽을 누구로 택할까.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카이사르는 길들이기 힘든 호랑이였다. 원로원은 카이사르의 권력욕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들의 수중에 놀아나기엔 카이사르라는 호랑이는 지나치게 영리했다. 반면 폼페이우스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폼페이우스에겐 허영심이라는 약점이 있었다. 슬슬 구슬려서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매달아주면 슬그머니 발톱을 내렸다. 여러 번의 사례를 통해 폼페이우스는 다루기 쉬운 인물로 확인됐다. 원로원의 선택은 폼페이우스였다.

무는 역할의 호랑이가 정해지면 다음 수순은 카이사르라는 호랑이를 함정에 빠트리는 작업이었다. 카이사르의 무기는 군대다. 카이사르는 갈리아(오늘 날 프랑스와 독일 서부 일대) 전쟁에서 공을 세웠다.

로마에서 성대한 개선식을 치러줘야 했다. 로마 군사령관의 최대 영예였다. 로마법에 따르면 개선식을 거행하는 사령관은 군대를 해산하고 혼자 루비콘 강을 건너야 했다. 바로 그 순간 확하고 그물을 펼치면 산채로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 로마 시내에는 군인은 물론 무장한 경찰도 존재하지 않았다.

군대가 없는 카이사르는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하다. 마침 카이사르는 로마 최고 관직인 집정관에 출마하려 했다. 그러기 위해선 로마로 와서 직접 후보자 등록을 마쳐야 한다. 개선식과 집정관 후보 등록을 모두 끝내려면 최소한 6개월 이상 자신의 군대와 떨어져야만 했다.

반년이면 긴 기간이다. 그 사이 원로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카이사르의 권력을 공중분해할 것이다. 이빨 빠진 호랑이 한 마리쯤 잽싸게 처리하는 것은 그들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원로원은 한 술 더 떠서 카이사르의 후임자 선출을 논의했다. 아예 카이사르를 농부로 만들 작정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카이사르였다. 순순히 덫에 걸려주지 않았다. 그는 단순한 야전 군인이 아니었다. 정치적 촉이 매우 뛰어났다. 촉은 권력 중심부에 꽂아둔 안테나를 통해 진화했다. 카이사르는 야전에 앉아서도 항상 로마에 안테나를 가동시켜 두고 있었다. 따끈따끈한 로마 정가의 소식을 지닌 밀사가 부지런히 로마와 카이사르의 병영을 오갔다.

그 무렵 카이사르는 라벤나에 있었다. 지금은 이탈리아 동북부에 위치한 도시지만 당시에는 카필라노 속주의 총독 주재지였다. 즉 로마 영토가 아니었다. 원로원의 목표는 카이사르와 군대의 분리였다. 카이사르도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원로원의 의도를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반란이었다.

그러려면 저, 루비콘 강을 건너야만 했다.

카이사르는 숙고를 거듭했다. 그의 앞에는 정반대의 갈림길이 있었다. 한쪽은 반역자, 또 다른 한 쪽은 정가 은퇴로 향하는 길이었다. 원로원은 개선식을 가진 다음 은퇴하길 바랐다. 개선식은 허상일 뿐이다. 그래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반대의 길 즉 반역은 그를 죽음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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