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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만 Sep 23. 2022

망각의 강 레테 14


죽음의 의미  

    

죽음은 생명의 끝을 의미한다. 생명을 지속시켜 온 모든 기능의 영구적 상실이다. 의학과 과학의 발전에 따라 죽음에 대한 기준은 조금씩 달라져 왔다. 

과거에는 심장이 정지되면 곧 사망으로 판정됐다. 그러나 정지된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거나 식물인간 상태서 소생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죽음에 대한 정의도 바뀌었다. 심장이 뛴다고 해서 곧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 목이 절단돼도 한 동안 심장은 뛴다. 뇌의 활동도 일정기간 지속된다. 길지 않지만 삶과 죽음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시간이다. 

생명의 궁극적 목표는 그것의 상실이다. 나는 결국 어떤 죽음을 맞게 될까. 누구나 장수를 누린 후 평온하게 죽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제 그렇게 죽을 확률은 매우 낮다.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의 저자인 의사 박중철에 따르면 한국인인 나는 대부분 요양시절과 중환자실을 오가다 죽는다. 그 확률은 무려 75%에 이른다. 

이 책에 따르면 한국인의 대부분은 66세 이후 17년 간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병원에서 죽는다. 이것이 가장 흔한 이른바 ‘최빈도 죽음’이다. 그런 죽음이 싫으면 자살을 하거나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처럼 안락사를 요구하는 길 밖에 없다.  

자살과 안락사의 구분은 일정부분 모호하다. 안락사는 네덜란드와 스위스, 캐나다, 미국의 일부 주 등 몇몇 국가에서만 허용된다. 들롱도 안락사를 위해 거주지를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옮겼다. 한국은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안락사(Euthanasia)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비롯됐다. eu는 영어로 good, thanasia는 죽음(death)을 의미한다.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하는 편안한 죽음을 뜻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존엄사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안락사는 곧바로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존엄사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품위를 지키며 죽는 것을 의미한다. 남아 있는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웰다잉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나라마다 안락사에 대한 개념은 조금씩 다르다. 영국에선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의사가 환자의 죽음에 의도적으로 하는 개입’으로 정의한다. 네덜란드에선 단순하게 ‘환자의 요청이 있을 때 의사가 생명을 중단시키는 행위’로 인식된다. 

네덜란드에서 택한 안락사는 두 가지 방식이다. 의사가 약물을 주사하는 것과 스스로 약물을 마시는 방식이다. 네덜란드의 시프 피텔스마씨는 79세에 암과 함께 치매 판정을 받았다. 

그는 후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2013년 어느 날 그는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모은 자리서 스스로 약물을 마셨다. 그는 아내에게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리고는 “잠이 온다”며 깊은 꿈나라로 빠져 들었다. 2016년 네덜란드에선 6,019명이 안락사를 선택했다.    

  

자살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카뮈의 소설 ‘시지프스 신화’ 첫 구절이다. 시지프스는 고대 코린토스를 세운 왕이었다.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와 헬렌 사이에 태어났다. 그는 인간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신의 저주를 받아 영원히 산 밑에서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맨 위까지 돌을 굴리고 올라가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일을 무한 반복한다. 카뮈는 시지프스의 운명에서 인간이 처한 부조리를 발견했다. 그 굴레에서 해방되기 위한 제 1 방안은 자살뿐이다. 

자살은 가장 적극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법이다. 영어 자살(suicide)의 어원은 라틴어 ‘suicidium’에서 왔다. sui는 자신의, 자기를 뜻하는 대명사다. cidium은 살인을 의미한다. 즉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다. 자살의 원인으로는 정신장애, 신체장애, 스트레스, 약물 중독, 괴롭힘 등이 꼽힌다. 

2017년 미국통계(구글 제공)에 나타난 자살 원인은 다음과 같다.

정신적 문제 50%

최근 닥쳐온 위기들 31%

위협적인 배우자 27%

나빠진 건강문제 21%

음주 문제 18%

약물(마약 포함) 남용 18%

분쟁 16%

가족문제 10%

직업문제 10%

경제적 문제 9%

법적 분쟁 8%

사랑하는 이의 죽음 7%  -이상 중복 포함     

한국의 보건복지부는 2022년 ‘자살예방백서’를 발간했다. 이 자료는 2020년 한국인의 자살 현황과 자살 예방 사업에 대해 소개했다. 더불어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의 통계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백서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자살자 수는 13,195명이다. 전년 대비 604명이 줄어든 숫자다. 자살률(인구 10만 명 당 사살로 인한 사망자 수)은 25.7명으로 역시 전년에 비해 1.2명 감소했다. 

한국의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해는 2011년으로 자살자 수 15,906명, 자살률 31.7명을 기록했다. 2020년 전체 자살자 가운데 남성이 9,093명으로 68.9%를 차지했다. 여성은 4,102명으로 31.3%. 자살을 시도한 횟수는 여성(21,176건)이 남성(13,729건)보다 더 많았다. 

연령별로 보면 50대가 2,606명으로 가장 많았다. 남성들의 경우 10,20대는 정신적 어려움, 30~50대는 경제적 어려움, 60대 이상은 육체적 어려움이 높았다. 여성의 경우는 모든 연령대에서 정신적 어려움을 꼽았다. 

OECD 회원국들과 비교할 때 한국의 자살률은 2019년 24.6명으로 전체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OECD 평균은 11.0명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은 30분마다 1명꼴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자살은 비단 인간에게만 발견되는 현상이 아니다. 문어는 자살로 보이는 독특한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다. 문어의 수명은 3~5년이다. 한 마리의 암컷은 일생에 한 번 산란한다. 한꺼번에 대략 2만에서 10개의 알을 낳는다. 수컷은 짝짓기 전후 먼저 죽는다. 

암컷 역시 알이 부화하기 전후 사망한다. 그 과정은 사뭇 비장하다. 문어는 보기와 달리 뛰어난 인지능력을 지녔다. 우연이겠지만 월드컵 축구 결과를 예언해서 유명해진 문어도 있다. 

문어의 수컷은 8개의 다리 가운데 세 번째를 통해 짝짓기를 한다. 이 다리를 거쳐 암컷의 몸 안으로 정자를 내뿜는다. 그런 다음 수컷은 수명을 다한다. 정자를 받아들인 암컷은 이후 5개월에서 7개월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생명연구가들은 이 시기 암컷 문어를 관찰할 후 ‘죽음을 향해 나선형으로 추락하는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피부는 창백해지고 근육은 탄력을 잃는다. 심지어 자신의 다리를 잘라내기도 한다. 

문어는 왜 이렇게 생을 마감할까. 연구가들은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문어는 같은 종을 잡아먹는 무척추동물이다. 자신의 새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죽이는 프로그램을 작동시킨다는 주장이다. 사람으로 치면 자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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