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과 양자강(1)

by 성일만

칭기즈칸


옛 것을 거울삼으면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당태종


몽골은 신기루였다. 홀연히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졌다. 유럽의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는 모두 몽골과 깊은 관련이 있다. 르네상스와 몽골 기병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대항해시대는 대체 초원 국가 몽골과 무슨 상관있을까?

양자강은 그 질문의 해답을 쥐고 있다.

13세기 몽골족은 모두 합쳐 백 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들이 정복한 바그다드라는 도시 인구와 간신히 맞먹었다. 금(金)이나 남송(南宋)의 5천 만 인구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했다.

콜럼버스는 1492년 신대륙을 발견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는 그곳이 아시아 땅의 일부인줄 알았다. 그가 원래 가길 원했던 나라는 원(元) 즉 몽골족의 나라였다. 콜럼버스의 꿈을 부채질한 것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었다.

‘황금의 나라’ 원을 다녀온 후 쓴 기행문이다. ‘동방견문록’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저마다 일확천금을 꿈꾸게 만들었다. 그 꿈은 대항해시대의 밑거름이 됐다. 대항해시대는 근대를 유럽의 시대로 이끌었다.

12세기까지 세계는 ‘고요의 바다’였다. 어느 대륙도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 하나의 모자이크가 아닌 각각의 그림에 불과했다. 변화는 칭기즈칸에게서 비롯됐다. 정복자 칭기즈칸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그의 꿈은 미완이었다. 원대함은 양자강에 가로막혔다. 강의 이남은 상상도 못할 부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양자강이라는 장애물로 인해 꿈을 이루지 못했다. 말을 타고 넘기에는 너무나 큰 강이었다.

체구가 작은 몽골말은 대신 뛰어난 지구력을 지녔다. 넓은 대지를 지배하기 위한 최상의 조력자였다. 그러나 말과 유목민은 양자강을 두려워했다. 부적을 붙이지 않고는 건널 엄두를 못낸 물의 장벽이었다.

만리장성을 쉽게 넘은 그들도 큰 강 앞에선 얌전해졌다. 양자강 너머의 재화는 탐났지만 강을 건너지 못하면 무용지물이었다. 최초로 강을 건넌 몽골족은 칭기즈칸의 손자였다.

양자강 앞에 이르렀을 때 그는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북쪽 초원에선 새로운 칸을 뽑기 위한 쿠릴타이(선거)가 열릴 예정이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선 당장 북으로 달려가야 했다.

남쪽에선 아군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분(남행)과 실리(북행) 양 갈래의 길이었다. 유목민은 실리를 우선한다. 하지만 그는 부족의 상식과 반대로 행동했다. 권력을 갖기 위해 북행(北行)한 것이 아니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결과 역시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가 양자강을 건넘으로 말미암아 세계사는 이전과 전혀 달라졌다. 그의 남행(南行)은 복잡한 미로를 거쳐 대항해시대로 연결됐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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