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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만 Oct 05. 2022

1917 가장 어리석은 전쟁 5

독일의 오판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를 공격했다. 마침내 1차 대전의 서막이 올랐다. 독일은 8월 1일 서둘러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틀 후엔 프랑스에도 전쟁 발발을 선언했다. 불길은 온 유럽으로 번져 나갔다. 

독일 수뇌부는 프랑스 침공 루트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중립국 벨기에를 거쳐 들어가면 시간을 줄일 수 있으나 영국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초반부터 영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이면 힘에 부친다. 전선이 너무 넓어지는 탓이다. 

고심 끝에 결국 독일은 8월 4일 벨기에 침공을 개시했다. 당초 벨기에는 프랑스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는 독일의 요구를 거절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를 치기 위해 조선에 길을 내달라고 요구했던 이른바 왜의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연상시킨다. 

개전 초기엔 독일의 펀치가 잘 먹혔다. 프랑스 수도 파리의 턱 밑까지 치고 들어갔고, 동부전선서도 무난히 러시아 군의 발목을 붙잡는데 성공했다. 슐리펜 계획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영국이 참전하면서 독일의 주먹은 급격히 적중률을 잃기 시작했다. 

더구나 동맹국인 오스트리아의 전력이 예상보다 형편없었다. 서부전선은 서서히 교착상태로 빠져들었다. 서부에서 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낸 후 러시아를 부순다는 계획은 꼬이기 시작했다. 슐리펜의 후임 몰트케 사령관은 서부로의 집중을 포기하고 동부전선으로도 군대를 이동시켰다.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전략적 실수는 프랑스 쪽에도 있었다. 군사력 면에서 프랑스의 위대했던 전성기는 나폴레옹 시절이었다. 나폴레옹 전술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일점돌파(一點突破)다. 나폴레옹은 수비보다 공격을 우선했다. 현대축구로 비유하면 ‘닥공(닥치고 공격)’이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적보다 한 발 빨리 움직였고, 상대의 가장 약한 고리에 전력을 집중시켜 전체를 무너뜨렸다. 1796년 이탈리아-오스트리아 연합군과의 전투서 27살의 청년 사령관 나폴레옹은 ‘닥공’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두 국가 연합군의 약점은 양군의 연결고리 지점이었다. 나폴레옹은 이쪽의 명령도, 저쪽의 지휘도 미치지 않는 어정쩡한 지점을 노리고 돌격해 들어갔다. 허를 찔린 연합군은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무너져 내렸다. 

나폴레옹이 즐겨 읽었다는 ‘손자병법’에는 “다수의 적으로 소수의 적을 치면 승리한다. 아군의 공격을 한 곳에 집중시키면 적은 흩어진다(허실편)”고 되어 있다. 

손자는 이를 위해 “바람 같이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전투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적을 끌고 다녀야지 적에게 끌려 다녀서는 이로움이 없다”고 주장했다. 나폴레옹만큼 이를 잘 활용한 전략가는 드물다. 나폴레옹은 ‘손자병법’ 번역본을 항상 베개 밑에 두고 읽었다고 한다. 

프랑스군이 나폴레옹의 전술에 수정을 가한 것은 1차 대전 때였다. 독일의 공격에 공격으로 맞받아친 프랑스군은 상대의 기관총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결국 프랑스는 공격에서 수비로 전략을 바꾸어야만 했다. 

그 결과 생겨난 것이 참호다. 상대의 기관총을 피하려면 참호를 깊게 파고 몸을 숨겨야 했다. 이른바 침대 축구다. 맞서 싸우기보다 질질 시간을 끌었다. 전쟁은 길어지고 사상자는 늘어났다. 프랑스 수비전략의 결정판이 ‘마지노선’이다. 

나중에 프랑스는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자 독일과의 국경에 급히 마지노선을 구축했다. 1차 대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깊이, 더 튼튼히 참호를 팠다. 그 안에는 전기와 물, 식량은 물론 여가시설까지 갖추었다. 

이는 프랑스의 또 다른 오판이었다. 2차 대전은 1차 대전과 전혀 양상이 달랐다. 전차와 전투기로 기동성이 향상돼 마지노선의 느리고 견고한 방어막은 전혀 효과적이지 못했다. 


고립주의 영국의 가세로 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1337-1453년)’을 치른 사이다. 

오래도록 영국의 최대 라이벌은 프랑스였다. 영국은 나폴레옹 시절 대륙봉쇄로 곤욕을 치렀다. 바다에서 영국을 이길 수 없었던 나폴레옹은 유럽과 영국 사이의 무역을 차단했지만 끝내 성공하진 못했다.

20세기 들어 영국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프랑스에서 독일로 바뀌었다. 독일은 유럽 본토에서 벌어진 전쟁에 ‘영예로운 고립’을 택해 온 영국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독일군 사령부의 뼈아픈 오판이었다. 

독일이 중립국 벨기에를 공격하자 영국은 즉각 참전을 선언했다. 개전 초만 해도 독일군의 기세는 사나웠다. 벨기에를 통과해 프랑스 북부 국경을 유린하며 파리를 향해 내달렸다. 

그러나 파리 근처 마른에서 참담한 패배를 경험했다. 다시 벨기에 국경 쪽으로 밀려난 독일군은 이프르에서 영국-프랑스 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프르 전투’는 참호전이라는 고통스럽고 긴 전쟁의 서막이었다.      


1차 대전은 많은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원병들이었다. 그들은 전쟁을 낭만으로 해석했고, 조국의 부름이라는 미명 아래 앞 다투어 대열에 합류했다. 전쟁에 나가지 않으면 겁쟁이로 손가락질 받았다. 이프로 전투에도 어린 독일 학도병들이 많이 희생됐다. 

한 달 동안의 이프르 전투에서 독일은 13만 명의 젊은이를 잃었다. 독일은 앞선 전력에도 불구하고 참호를 파고 맞선 연합군에 승기를 잡지 못했다. 이프르 전투는 세계전쟁사에서 참호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일깨워주었다. 

독일 작가 에리히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1차 대전에 참전한 독일 젊은이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영화로도 유명해진 작품이다. 원래 제목은 ‘서부전선의 고요함(All quite on West Front)’이나 번역자가 좀 더 타이트한 카피를 뽑아냈다. 

서부전선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속출하자 각국의 군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민족주의 광풍에 휘말린 독일의 대학 강의실에선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참전을 부추겼다. 이에 고무된 학생들은 마치 소풍가는 기분으로 전쟁터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전쟁의 현실은 그들의 이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전우들은 매일매일 죽어갔고,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였다. 그건 적군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이었던 주인공 폴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나는 왜 이 지옥에 왔나. 

이 전쟁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의 친구 프란츠는 부상을 당해 다리를 절단했다. 그러고도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는 군의관을 붙잡고 통사정했다.

“내 친구는 이제 겨우 19살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군의관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죽어가는 환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프란츠는 죽었다. 

폴은 휴가를 나와 모처럼 대학을 방문했다. 교수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참전하라 열을 올리고 있었다. 교수는 강의실에 온 폴에게 전쟁에서의 영웅적 스토리를 들려주라고 말했다. 

“우리는 참호 안에 웅크리고 앉아 오직 살아남으려고 버둥거릴 뿐이야. 죽은 병사들이 너무 많아.”

교수와 학생들은 실망스런 표정이었다. 그들은 참전용사에게 좀 더 멋진 얘기를 듣고 싶어 했다. 십자군 전쟁에 나오는 용이 불을 뿜는 영웅담 같은.

“다른 얘기는 없는가?”

교수가 폴을 채근했다.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에서 배운 게 하나 있긴 하죠. 나라를 위해 죽는 것 보다 살아남는 게 훨씬 낫다는 사실을 요.”

“겁쟁이!”

학생 하나가 소리쳤다. 그러자 폴이 말했다. 

“전쟁터에선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다예요. 언제까지 저들을 속이지 마세요.”

그가 교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1914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양군은 하루 동안 휴전을 했다. 서로의 참호를 오가며 술과 음식을 주고받았다. 독일과 영국 병사들은 축구 경기를 벌였다. 독일이 3-2로 이겼다. 

여담이지만 독일과 영국의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는 늘 전쟁을 방불케 한다. 2021년 말 현재 모두 33번 맞붙어 독일이 15승 4무 14패로 앞서있다. 이 둘의 A 매치는 한일전 못지않게 박 터진다. 가장 유명한 1966년 영국 월드컵 결승서는 영국이 독일(당시 서독)을 4-2로 물리쳤다.

전쟁은 교착상태로 접어들었다. 양측 모두 상황을 타개할 전환점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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