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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나 Feb 20. 2023

현실 속 비건문답
& 비건과 대화할 때 팁

비건을 처음 만난 분들, 이 글 미리 읽고 가면 어때요?

아래 질문들은 제가 비건을 시작하고 실제로 들었던 질문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댓글이나 메신저로 받은 질문이 아닌, 현실에서 저를 만난 사람들이 물어본 내용 중 자주 등장하거나 인상깊은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했어요.


아래 정리한 내용대로 답했을 때도 있고, 당시에는 당황해서 다르게 대답했다가 집에 가면서 속으로 '이렇게 대답할 걸' 하는 답변을 정리한 내용도 있습니다.




Q. 비건은 그럼 뭐 먹고 살아요?


- '밥' 먹고 살아요!

'비건 음식'이라 하면 특별할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똑같이 밥 먹고 반찬 먹고 살아갑니다.

쌀도 식물성이고, 생각보다 우리가 먹는 많은 반찬들이 식물 기반의 음식들이거든요.


좀더 설명하자면 죽은 동물의 몸이나 동물의 몸에서 나온 것 빼고 다 먹어요. 

채식을 시작할 때 저도 제가 뭘 먹을 수 있나 궁금해서 노트에 음식을 하나씩 나열하며 정리했던 적이 있는데요. (ENFJ 기질... 엑셀로 정리할 뻔 했지 뭐예요. 너무 많아서 실패했어요.)


크게 보면 아래 분류에 들어가는 음식들을 먹어요.


1. 곡식류(쌀 잡곡 밀 콩 등) & 곡식 베이스 음식(밥, 떡, 빵, 각종 면, 전, 풀빵, 두부, 템페, 술, 두유 등)

2. 채소류(잎채소, 뿌리채소, 감자 고구마 등) & 채소 베이스 음식(나물, 볶음, 구이, 절임 반찬, 채소전, 샐러드, 국물, 튀김, 비빔밥, 볶음밥, 쌈밥 등)

3. 과일류 (+꿀 안 넣은 모든 과일잼, 과일청, 과일쥬스, 말린 과일, 과일 아이스크림 등)

4. 견과류(하루견과 굿) 및 균류(각종 버섯들)

5. 채식 소스류 (설탕, 소금, 후추, 식용유, 참기름, 간장, 연두, 식초, 칠리소스, 토마토소스, 소이마요, 피넛버터, 아몬드스프레드 등)

6. 채식 아이스크림 및 과자 (우유, 계란, 고기, 해산물, 꿀, 비타민D3, 젤라틴 등이 안 들어간 모든 제품 가능)

7. 기타 대체식품 (동물성 성분이 들어가지 않은 여러 음식들)


생각보다 먹을 수 있는 게 많죠?

동물의 살, 동물이 만든 부산물(젖, 알, 꿀), 동물의 몸에서 온 성분(젤라틴, 비타민 D3 등)을 제외하고 다 먹을 수 있답니다. 비건을 시작하고, 성분표 읽는 버릇이 생겼는데, 제가 먹고 있는 음식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 꼼꼼히 살피고 먹는 자세는 건강을 위해서도 좋은 것 같아요.


현미밥, 버섯 미역국, 시금치나물, 숙주나물, 콩고기볶음(유부 맛 남), 김자반 (집에서 밥 먹을때)



Q. 한국에서 비건하는 거 힘들지 않아요?


- 아예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점점 덜 힘들어지고 있어요.

근데 뭐 먹고싶은데 못먹는 그런 힘든 게 아니라 메뉴다양성이 부족하고 인식이 부족해서 힘든 거니까요. 비건인구가 많아지면서 인식이 바뀌면 상황도 더 좋아지고 더 편해지겠죠.


한식은 채식 베이스가 대부분이라 육수랑 고기만 빼면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많고, 장을 봐서 직접 해먹기에도 좋은 환경이에요. 예를 들면 된장, 두부, 약간의 채소(+연두)만 있어도 집에서 맛있는 된장찌개 뚝딱 가능하고, 소면 삶아서 간장 참기름 파 넣으면 간장국수도 뚝딱 가능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비건 브랜드도 많아졌고 새벽배송 서비스에서도 주문시켜먹을 수 있는 비건음식이나 배달음시도 많아서, 저는 (걱정해주시는 것보다는) 꽤나 편하게 비건 직장인으로 살고 있답니다.



Q. 밀가루도 먹을 수 있어요?


- 네..? 네.. 밀가루는 채식이에요. 밀로 만든 거고 밀은 곡식이니까요. 곡식은 다~ 채식입니다!

밀가루가 몸에 나쁘다고 하지만, 저는 밀가루로 만든 빵, 면, 과자.. 다 좋아해요.


사당 비건맛집 남미플랜트랩에서 먹은 리조또, 감자튀김, 피자, 파스타 (밀가루 대잔치)


Q. 밀가루 돼요? 근데 비건들 빵은 못먹잖아요?


- 밀가루는 채식이지만, 빵에 우유, 계란이나 고기가 들어가서 못먹는 경우가 많아요.

정통 베이글과 바게트, 샤워도우 같은 빵들은 원래 레시피 상 우유, 계란 없이 만들어지니까 먹을 수 있는데, 요즘 빵집에서는 관습적으로 모든 빵에 탈지분유를 넣는 건지 못 먹는 경우도 있어요.


근데 전 빵을 좋아해서 비건 빵을 사먹습니다.

동물성 재료 대신 다양한 곡식과 채소를 바탕으로 비슷한 맛을 내는 빵들도 있고, 알러지 있는 분들을 위해 아예 밀가루도 안넣고 쌀로 만드는 비건빵도 찾아보면 많아요.


케이크도 비건으로 많이 판답니다. '비건케이크' '비건디저트' 검색해보시면 맛도 건강도 (+환경도 동물도) 좋은 비건빵들 만날 수 있어요. 저희 엄마가 생크림을 엄청 좋아하시는데, 비건 생크림 케이크 먹고는 이거 채식 아니지? 를 연발했던 적도 있어요. 제가 식물성 생크림이라고 해도, 자꾸 안 믿으시더라고요. 그 정도로 지금의 비건 베이킹은 많이 발전했답니다.


그렇지만, 모든 일반 빵집이 다 맛이 다르듯, 비건 빵집도 다 맛이 다르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입에 맞는 곳을 찾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담백한 곳, 기름진 곳, 달달한 곳, 건강한 곳, 다양하게 있으니까요.


(좌) 사당 비건맛집 남미플랜트랩 식전빵 (우) 망원 비건맛집 다켄씨엘의 만다린 오픈 샌드위치, 두유 크림 파스타


Q. 그러면 라면도 먹어도 되네요? 라면 채식이에요?


- 먹을 수는 있지만 채식라면이 따로 있어요. 일반 라면은 고기나 계란, 해산물이 들어가서요. 채식짜장면 같은 것도 따로 팔고요. 모양이나 끓이는 법은 그냥 일반 라면이랑 짜파게티랑 똑같은데 성분만 다른 거에요.


미국에는 신라면 비건이 인기가 높다는데, 왜 국내에는 판매하지 않고 있는 걸까요..? 속상합니다 .. 전 라면 되게 좋아하거든요.



Q. 혹시 탄산음료도 먹어도 돼요? 콜라도 먹어요?


- 네 대부분은 비건이에요. 콜라도 비건이에요!

우유나 계란 넣은 탄산음료는 거의 없고, 고기가 들어가지도 않으니까요.

다만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고, 건강에 좋지 않아서, 지양하려고 노력중입니다.



Q. 채식하는데 술도 먹을 수 있어요?


- 왜요? 원래 술은 채식이에요!

우유 안넣고, 꿀 안넣고, 동물 몸으로 부산물 제거 안하면! 비건! 그러나 대부분의 흑맥주와 와인은 논비건입니다.. 동물 몸으로 부산물을 제거하기 때문에.. 그리고 황당하지만 종종 막걸리도 우유 들어가 있고요..


저는 비건 시작하고, 대부분의 술이 비건이라는 데에 크게 안도했답니다. 애주가, 까지는 아니어도 호주가 정도는 되거든요. 건강을 위해 절주하려고 하지만, 술을 마시며 떠들고 릴렉스하는 시간을 사랑하는 편입니다.


제 주위 비건 중에 제가 제일 술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요. (좌) 다켄시엘 사와 (중) 발베니 더블우드 12년 (우) 펠러 아이스와인


Q. 치킨도 못먹겠네요? 안 먹고 싶어요?

밖에서 채식하다가 집 가서 몰래 치킨 시켜먹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 아뇨.. 전혀 안먹고 싶어서 그럴 일은 없어요.

비건이 되면 더이상 동물의 살이 '음식'으로 보이지가 않아요.


(그런데 이런 질문 하시면 안 되는 거 모두 아시죠..? 비건 시작하고 들은 무례한 질문 중 상위권이었어요. 정말 친한 사이에서 가볍게 '진짜 먹고 싶은 적 없냐'고 물어볼 수는 있지만, 대체로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 이런 질문은 공격적이라고 느껴졌어요.)


근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비건이 되면서부터 동물을 먹고 싶지 않아져요. 동물을 먹고 싶지 않아져서 비건이 된 거고, 비건이 되어 안 먹다 보니까 더 못 먹게 되었어요.


비건이 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공장식 축산의 진실들을 보고 나면, 이성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동물의 살이 음식으로 느껴지지 않고 폭력의 결과나 피해자로 보이기 시작해요. 태어나자마자 갇혀 살다가 수명의 20분의 1도 못살고 30여일만에 삐약거리면서 죽는, 몸만 커진 병아리들의 살이라는 걸 아니까, 입에 넣고 싶지도 씹고 싶지도 않아지는 거죠.


놀랍게도 이전에 전 주 3회씩 치맥을 하던 사람이에요. 보통 채식을 한다고 하면 원래도 고기를 안 좋아했을 것 같지만 전 아니었어요. 닭고기 브랜드마다 메뉴와 맛을 외울 정도로 자주 먹었어요. 그 고기의 맛을 좋아한다기보다, '치맥을 한다'는 사회적 의미가 주는 힐링, 파티, 축하, 위로 등의 의미를 더 즐긴 거였고, 양념과 튀김의 맛을 좋아했던 거라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어요.


가끔 튀김이나 양념이 땡기면 러빙헛 소이컬틀릿이나 콩치킨, 카페 시바의 콩치킨 등을 먹는데 맛있긴 합니다. 근데 튀김과 양념 맛 때문이지 죽은 동물의 식감이 그리워서는 아닙니다. 저에겐 콩치킨이나 김말이튀김이나 둘다 그냥 맛있는 채식 튀김으로 느껴져요.


사실 저를 유혹하는 것은 치킨보다는 빵이나 쿠키, 과자 같은 음식이에요. 동물의 살은 보자마자 비위가 상하고 그 죽음을 상상하게 되어서 마음이 무거운데, 빵은 겉으로 보기에는 동물성 성분이 하나도 보이지 않잖아요. 물론 소젖을 생산하는 과정도 못지않게 잔인하지만, 액체로 담겨있는 우유가 아니라 빵이나 과자에 들어가있는 경우는 잘 보이지 않아서 유제품 냄새가 과하지 않을 때는 먹고 싶을 때도 있어요. 예를 들면 사무실에 선물로 도넛이나 호두과자가 들어와서 모두 하나씩 먹을 때, 나도 저 맛 아는데 하나 먹고 싶다, 정도의 유혹이 드는 거죠. 제가 유달리 과자와 빵을 좋아하는 비건이기도 합니다.


이태원 쏭타이의 까이팻맛무어 비건 메뉴! 비건 아닌 분들도 다 먹어보고 놀라는 맛 "비건 맞아?"



Q. 초록색 좋아하는 것 같던데, 비건이라 초록색 좋아하는 거에요?


- 네? 아뇨 원래 좋아했어요.. (논비건이신 분들 빨간색을 좋아하시나요? 논비건일 때 빨간색을 좋아하진 않았어서...)


이 질문은 황당하고 귀여운 질문이라 생각했어요. 한편으로는, 그만큼 비건의 수가 적고 주위에서 비건을 볼 일이 없으니까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거구나 싶어서 아쉽기도 했고요. 비건이 선택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이나 더 대중적인 가치관이었다면, 이런 질문을 받을 일은 없었겠죠. 아마 이런 질문을 한 분은, 태어나서 만나본 사람들 중에 비건이 제가 처음이었으니 이런 궁금증을 가지셨던 것 같아요.




Q. 영양분이 부족하지는 않나요? 제 친구는 하다가 몸이 아파서 그만뒀다는데...


- 네 전혀요. 채식이라고 해서 풀만 먹거나 하면 영양도 부족하고 아플 수도 있고, 사실 채식 안해도 건강하게 안먹으면 아플 수 있잖아요. 전 채식 때문에 영양이 부족하거나 아픈 적은 없었어요.


동물성 단백질을 주로 먹는 황제 다이어트 창시자가 사망했다는 이야기는 많이들 알고 계시죠? 과단백, 동물성 콜레스테롤은 건강에 위험하고, 채소를 먹지 않으면 건강에 적신호가 옵니다. 그렇지만, 동물성 단백질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몸에 이상이 온 경우는 없어요. 저는 비건 5년차, 건강하게 살아남아있습니다.


친구가 해준 비건 밥상! 비건 떡갈비, 버섯콩나물밥, 천사채잡채, 그리고 너무 맛있는 양념장!






이상으로 비건에 대한 여러 질문과 답을 정리해보았어요.


저는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비거니즘에 대해 비건이 아닌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아주 반가워하는 사람이라 질문 받는 것은 늘 환영입니다. 그렇지만,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을 때는 가끔 지치기도 해요.  나 한 사람이 모든 비건을 대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잘 대답하고 싶어 긴장하거나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기도 하고요.


비건은 ~ 으로 시작하는 질문을 받을 때, 그 질문한 사람이 만난 비건은 몇 명 안 될 거고, 내가 어떻게 답하는가에 따라 그 한 사람이 '비건에 대해 갖는 선입견/생각/감정'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여러 명 중에서 저 혼자만 비건일 때는, 사람들이 비건에 대해 오해하거나 궁금해하는 점을 내가 다 해소해줘야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이 들 때도 있고요. 이 부담을 피하려고 비건임을 밝히지 않는 직장인도 있다는 걸 알고 있고요.


비건들에게 아예 질문을 하지 말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질문은 물어보기 전에 한번 검색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특히 가까운 사람이나 자주 보는 사람이 비건이라면요. 라면이나 콜라가 채식인지는 검색해도 잘 나오는 내용이거든요. 요즘 국내 비건 브랜드도 많아졌고, 비건인구도 늘어나서, 조금만 검색하면 다양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어요. 물론 그래도 어렵고 궁금하면, 비건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죠. 저는 이제 주위에 비건도 많고, 비건 관련 일을 하는 분들도 많아지다보니까, 가끔 '비건도 밀가루나 술을 먹을 수 있냐'고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오히려 신기하더라고요.


더 편안한 대화를 위해서는 비건인 당사자들에게 "비건들은 ㅇㅇ 먹나요?" 말고 "(상대방)님은 ㅇㅇ 먹나요?"라고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비건들도 다 식성이 다르고, 기호가 다르니까요. 모든 차별은 일반화에서 시작합니다. 비건들은 다 이렇던데, 너는 왜 ㅇㅇ해?/왜 ㅇㅇ 안 해?/너도 혹시 ㅇㅇ해? 이런 식의 질문은, 공격적으로 느껴지고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사실 저는 술도 먹고, 가공식품도 먹지만, 어떤 비건들은 술이나 담배를 모두 멀리하거나, 가공식품 대신 자연식물식을 선호하는 분도 있어요. 저는 오이와 고추를 먹지 않고, 대체해산물도 별로 안 좋아하지만, 오이를 즐겨 먹고 비건스시를 좋아하는 비건들도 있고요. 비건도 사람이고요, 그냥 동물을 안 먹기로 했다는 공통점 빼고는 모두 다른 사람입니다. 좋아하는 요리도, 식성도,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도, 가치관이나 삶의 우선순위까지도, 다 다를 수 있어요.


그럼, 앞으로 더 많은 비건인 친구들을 만나며 살아가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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