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부터 마케팅 트렌드 자료에서 채식주의자 & 비건 단어가 눈에 띄게 많이 보인다. 작년부터 매체 리포트에도 비건 화장품 케이스가 소개되고 MZ세대 트렌드로 빼놓기 어려운 키워드가 '필환경'과 '채식'이다. 밀레니얼 세대인 내가 2019년 여름에 비건을 시작했고 내 주위에도 1~2년차 비건이 상당히 많다. 게다가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2'에도 '비건 비긴즈'가 수록되었다. 이 새로운 소비자 집단의 행동이 마케팅 트렌드로 떠오르기 위해 대략 1년 반이 걸렸고, 비건 시장은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보스 페이스북 21년 3월 20일 자 트렌드 게시물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2>에 실린 비건 비긴즈
나는 회사에서는 마케터로 일하고 있고, 퇴근한 후나 주말에는 사이드 프로젝트로 '비건먼지'라는 유튜브 팀에서 기획, 제작 PD이자 채널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비건먼지로는 비건 화장품 광고/협찬 제안이 계속 들어오고 그중 절반은 대행사를 끼고 연락이 온다. (색조화장은 가능한 리젝 중이고 기초제품도 용기나 비건인증 여부를 확인해서 아주 소규모 협찬만 진행해왔다) 역시 마케팅 비용 젤 많이 쓰는 업종 중 하나라 그런지, 화장품 브랜드 제안이 제일 많다. 원래부터 화해 등 어플로 화장품 성분을 따져가며 쓰던 소비 트렌드(클린 뷰티 트렌드)가 강해서인지, '순식물성' '저알러지'인 '비건' 화장품 트렌드로 쉽게 이어지는 듯 하다. 원래도 성분 상 순식물성이었던 화장품을 이전까지는 '저자극' '순수' 등으로 포장했다면, 최근에 '순식물성'이라고 다시 이야기하면서 트렌드에 편승할 수 있던 거라 생각한다.
비건먼지 채널 막간 홍보 : 비건이 뭔지 모른다면? 비건 소비자 궁금하다면? 비건먼지 보십시오.
식품 쪽도 여러 브랜드와 스타트업들이 커져가면서 마케팅에 불을 붙이고, 대기업들은 해외로만 판매하던 채식 옵션 상품을 국내에도 도입하기 시작했다. 삼양 비건라면 출시 소식이 퍼지는 중 이미 해외에서 몇 년 전부터 판매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채식으로 충분히 맛있게 만들어 팔 수 있는데, 국내 시장이 작다고 판단해서 판매를 안해왔던 것. 그러니 비건 소비자가 더 가시화되어야 하고 비건 식품이 더 가시화되어야 한다. 클린 비건, 자연식물식 다 좋지. 근데 비건이 더 쉽고 접근가능해야 비건 인구가 늘어날 거고 더 비건하기 쉬운 세상이 올 거다. 난 라면 좋아하고 떡볶이나 짜장, 만두, 빵, 케이크, 초콜릿 다 너무 좋아한다. 아무 마트나 편의점, 음식점에서 이런 걸 비건으로 살 수 있다면 하루 한 끼라도, 후식이라도 비건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동시에 풀무원이 비건 인증원에 줄줄이 인증을 신청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기업 중에서는 풀무원이 비건 시장을 장악할 것 같고, 플랫폼으로는 역시 채식한끼, 대체육은 언리미트와 태경농산(농심)이 더 기대된다. 새벽배송 서비스에서 비건 카테고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작년엔 러빙헛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다가, 작년 말부터 마켓컬리와 헬로네이처를 꽤 이용했고, 최근 채식한끼와 언리미트 자사몰 구입을 몇 번 했다. 비건 패션이나 중고패션시장도 계속 커지고 있다. 모쪼록 이 시장이 더 커지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내가 비건이면서 또 광고 업계에 있었던 마케터다 보니까 비건 상품 광고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가끔 이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 내부에 비건이 아무도 없었나, 담당자가 주 소비자인 비건 타겟에 대한 스터디가 많이 모자르네, 이렇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비건 마케팅할 때 유의할 점, 비건인 마케터가 말씀해드립니다. (짝짝짝)
1. 비건 제품 홍보 콘텐츠에 논비건 음식이나 상품을 함께 배치하는 경우 = 노노!
-> 같이 등장한 이것도 비건인가? 엑 아니네... & 아... 이 제품 혹시 논비건 타겟인가? or 이거 만든 담당자가 비거니즘이 뭔지 모르는구나 -> 구매욕구 하락
예시. 비건 대체육인데 계란과 치즈를 얹어 홍보하거나, 비건 대체치즈를 동물 살점 위에 얹어 녹이거나,
비건 아이스크림 위에 연유를 끼얹거나, 비건 화장품인데 가죽/동물털 아이템과 촬영..? (이런 경우 없을 거 같지만 ... 종종 있다)
이런 거 보면 진짜 이건 뭐지? 싶고, 선뜻 구매할 맘이 안 생긴다. 일명 쎄이다(쎄하다+레이다)가 작동해서, 해당 비건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한다. 비건이라는데... 비건이 뭔지 아는 건가? 하는 의문이 생겨나면서 구매욕구가 급 하락하는 것!
비건 및 플라스틱 프리 지향하시는 사장님들이 100퍼센트 비건으로 연구해서 만든 비건 식품이랑 페어링해서 판매하고 홍보하는 거 사드리기에도 내 엥겔지수는 충분히 높다. 저런 식으로 홍보하는 비건상품까지 살 여력이 없다..
근데 예외가 딱 하나 있다면, 풀무원 연두... 요리 에센스 연두는 논비건 식품과 같이 홍보해도 냉장고 필수품....
(but 연두 SNS 팔로우는 안 한다. 논비건 전시 너무 많음)
2. 비건 브랜드 대표 개인 SNS가 공개되어있는데 육식전시가 과도한 경우 -> 비거니즘 모르면서 그냥 비건코인 챙기려고 '비건'으로 포지셔닝 한 거구나 -> 구매욕구 하락..
당연히 비건만 비건 사업 하라는 건 아니지만, 비거니즘에 대한 이해와 비건인 타겟에 대한 기본적인 스터디와 존중이 있었으면 한다. 어떤 분야든 그게 마케터의 본질 아닌가. 사람의 마음을 설득하고 어떤 생각이나 행동으로 연결하려면,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아야지. 스터디가 부족한 채로 비건이 트렌드니까 비건으로 해야지 비건 그냥 식물성 맞지? -> 이런 얕은 태도는 비건들에게 반감을 산다.
비거니즘은 종차별주의 철폐운동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거다. 비건들은 인간 동물이 비인간 동물을착취하고 학살하는 데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폭력을 불매하기 위해 동물성 식품과 물건(브랜드)을 불매한다. 그 결과로 순 식물성 식품과 물건(브랜드)을 소비하는 거다. 종차별주의는 성차별, 인종차별, 지역차별 등과 같이 뿌리깊게 이 사회에 박혀있는 부조리다. 이 종차별 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 우선 나부터 그 육식주의 시스템을 불매하는 거다. 그러니까 사실 비건들에게 "너네끼리 하는 건 괜찮은데, 강요만 하지 마"라고 라는 태도 자체가 폭력적일 수 있다. 마치 인종차별 철폐 운동하던 분에게 "니가 흑인을 인간으로 대하는 건 네 자유인데, 나에게 강요하지 마"와 같은 것... 비건은 취향이나 다이어트가 아니라, 실천이고 운동이다.
(비건 광고 제안을 보내온 계정주 피드에 붉은 살점이 마구 보이면, 그냥 비건 소비자 개인 입장에서 거부감이 듦.. 비거니즘은 비인간동물을 착취하지 말자는 삶의 태도인데, 다른 동물을 죽여 전시해놓고는 '비건 제품 홍보' 제안을 주시면... 기분이 참...)
3. 플프리, 제로웨이스트, 그게 뭔데? 아셔야 합니다.
비건들은 대부분 식단 뿐 아니라 의식주 전반에서 비거니즘과 플라스틱 프리,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한다. 그러니까 친환경 포장을 고민하시거나 최소한의 포장으로 제품을 경험하도록 구성하면 비건들이 더 자주 사고싶어진다. 화장품 브랜드라면 러쉬나 모나쥬처럼 용기회수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도 좋다.
특히 화장품 중에 불투명한 유리용기, 투명&갈색이 아닌 유리 용기, 재활용이 어려워보이는 복합 플라스틱이나 색상이 들어간 플라스틱 용기...는 나도 피하고 주위 비건들도 가능한 피하려고 한다. 마스카라나 립 틴트 등이 대표적인 복합 플라스틱 제품이다.
4. 비건 = 예민보스? 노노..
이건 드물긴 하지만.. 비건들 때문에 비건으로도 내준다는 식의 시혜적 입장의 언행이나 문장 또는 비건들을 예민종자로 몰아가는 경우...
-> 논비건 브랜드가 비건옵션을 만드는 경우, 비건들의 선택지가 넓어져서 너무 반갑지만.. 그 옵션 확대하신 분의 태도가 시혜적이면 반감이 든다.
사실 비건들의 소비파워 때문에 '돈이 되니까' 옵션을 추가한 거고 비건들도 돈 내고 사는 건데, '우리가 더 고생해서 비건까지 챙겨주는데 비건들 너무 바라는 게 많아' 식의 태도는 실망과 불매 다짐을 이끌어낼 뿐...
+) 추가적인 욕심인데... 비건을 타겟으로 비건 제품을 마케팅 하려면.. 비거니즘 책 한 권이라도 훑어라도 보시고, 책은 아니더라도 유튜브에서 비건 인터뷰한 영상이라도 보고, 주위 건너건너 비건인 사람 있으면 연락 부탁해서 스벅 아아메 쿠폰이라도 주면서 (스벅에 비건 옵션 많아서 비건은 스벅 선호함) 비건 소비자 인터뷰도 하고, 이를 통해 이런저런 인사이트를 얻어서 마케팅 전략을 짜셨으면 좋겠다.
비건들은 비건 제품 나왔다고 하면 우선 쌍수 들고 반겨준다. 기대하고 기쁘니까 실망도 하고 열렬히 피드백도 한다. 서로 함께 비건시장 키워보아요!
마케터 여러분 힘냅시다!
오늘은 여기까지...
또 뭐가 떠오르면 시리즈를 써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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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뭔데, 비건 마케팅 어쩌고 저쩌고야? 하실 수 있으니, 제 소개를 덧붙인다면...
학부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했고, 연합광고동아리에서 각종 TF와 PT와 공모전, 광고제에 참여 및 운영을 했고,
마케팅 대행사에서 일하다가, 쇼핑몰 브랜딩 했다가, 중간에 영화 일로 잠깐 샜다가,
다시 마케팅 AE로 일하기 시작, 최근 21년부터 22년 여름까지는 스타트업 마케터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19년 여름 비건이 된 후 여러 비건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비건먼지 유튜브 채널을 키워왔습니다. 덕분에 소비자와 마케터 관점에서 여러가지를 읽을 수 있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