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그리우면, 그럴 수 있지. 좋군!
사람마다 삶에 그리운 대상이 저마다 있겠지만 나는 아빠가 그랬다.
살면서 누군가를 이렇게나 그리워한 적이 처음인 이유는 살아오면서 그 흔한 이별 한 번 안 해봐서가 아니라,
그동안 어떤 사람과의 이별이 있어도 (그것이 연애 후 이별이던, 배신당한 후 인간관계의 일방적인 단절이던)
쓰린 마음 가운데 그런 생각을 했다.
'뭐, 일단 살아는 있잖아. 언젠간 마주칠 수도 있겠지. 정 너무 보고 싶으면 연락해서 만나면 되고. 보고 싶은 마음 견디는 게 더 힘들 바에는 그냥 전화 한 통 해보지 뭐.'
그런데 아빠는 천국에서 다시 볼 소망이 있긴 하지만, 이 땅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무너지게 했다.
가슴 저미는 그리움. 살면서 이 정도 깊이는 처음인 듯싶다. 사랑하던 누군가를 잃어 본 사람은 이 마음을 알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은 이 그리움을 웹드라마로 제작해, 시나리오나 연출로 풀어내기도, 독립영화로 제작해 절절한 눈물연기로 풀어내기도 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나름 풀며 살았는데 신기하게 이렇게 감정이 줄어들지 않고 깊어지는 것은, 아마 그리움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사랑이기 때문이리라.
어떤 어려움도 해결책이 있고, 열린 또 다른 문이 있고, 결국은 끝이 있겠지만, 일단 나는 이 그리움과 함께 삶을 살아내야 했다.
박장대소하며 웃다가도 문득 찾아오는 진한 그리움은, 행복 앞에 나를 멈칫하게 했다. 아빠 없이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했다.
아빠는 내가 임신 중일 때 돌아가셨는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배 속에 아가는 무사히 잘 크고 있나 병원에 정기검진을 가야 하는데 마침 남편이 출장이라 혼자 택시를 탔다.
그런데 처음 보는 기사님이 무슨 잃어버린 딸을 만난 것 마냥 나의 안부를 묻고, 걱정하고, 배 속에 있는 아가를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을 친아빠처럼 진짜 자상하게 말씀해 주시는 거다.
어찌나 그 내용들이 자세하고 따뜻한지, 기사님의 뒤통수를 보는데 마치 아빠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택시에 내려서도 얼떨떨할 만큼, 나를 아예 병원 문 앞까지 내려준 뒤 본인도 내려서 마중하고 출발해 가셨다. 떠나는 택시를 보며 아빠가 잠시 다녀간 것 같아, 장대비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최근에는 남편과 아가 둘과 마트에 갔는데, 시식코너가 얼마나 맛있는가. 가족 모두 신나서 시식코너 앞에서 줄 서며 사이좋게 서로 입에 고기 조각을 넣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건너편에서 물건을 진열하던 직원 아주머님이 유민이에게 갑자기 이름을 물으셨다. 유민이가 해맑은 얼굴로 이름을 말씀드렸더니 아주머님께서,
"유민이라고 했지? 유민아, 엄마는 말이야,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의 예쁘고 소중한 딸이야. 그러니까 마음 아프게 하면 안 돼~알았지?"
하시는데 왜 그 아주머님에게서 아빠가 느껴졌을까.
순간 느껴지는 이 진한 감정들은 감사하기도 하고 너무 따뜻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한 순간에 나를 울렸다. 뒤돌아서 눈물 흘리는 나에게 남편이 어깨를 토닥여 주며 다 안다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손자들이라도 보고 가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출산 3개월을 남겨놓고 돌아가신 아빠가 너무나 가슴 저리게 그리웠다.
이쯤 되니 세상에서 아빠의 흔적들을 느끼며, 느껴지는 모든 순간을 감사하게 받고, 누리기로 했다.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만 봐도, 비 오는 날 빗소리만 들어도,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너무 행복하거나 힘들어 지칠 때조차.. 떠오르는 얼굴.
그리운 대상이 있고 세상을 살면서 더 폭넓은 감정으로,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남겨진 자의 작은 축복이다.
편견과 교만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던 내가 어느새 '저 사람에게도 사연이 있겠지'. '아픔이 있진 않을까,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내 안에 사랑이 있음을, 그 사랑의 실체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요즘이다.
나이가 들어감이 좋다. 하루가 지날수록 아빠를 만날 날이 다가온다.
만나면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할까?
뭐든,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