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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고 Jun 21. 2023

영화 [오두막], 심판과 용서

신과의 대화

남자가 막내 딸을 잃게 되었던 오두막은 기억 속에 봉인된 금기의 장소였다. 그런데 신은 어느날 그곳으로 남자를 초대했다. 그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1. 곪아가는 상처


상처가 곪아가는 것은 사실 본인이 그 상처를 방치했기 때문이다. 상처를 방치하는 것은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심정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기에 상처가 곪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남을 탓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 상처를 직접적으로 준 사람, 가해자를 탓하지만, 좀 더 악화되면 가족이나 친구, 혹은 이 세계의 시스템, 심지어는 신에 대해서 원망을 하게 된다. 남자는 분노와 자책감에 괴로워했고, 소리 내지 않은 채  말라죽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정말 이 세계는 그에게 관심이 없는 것일까? 남자는 신에게 물어본다. "왜 사랑한다면서 가장 힘들 때는 등을 돌렸나요?" 신은 이렇게 변명한다. "나도 너와 함께 고통받고 있었다." 그러면서 함께 아파했던 은밀한 흉터를 증거로 보여준다.


2. 심판자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자신에게 해로운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순간적으로 모든 상황을 심판하려 든다. 누군가 나를 때렸다. 나는 그 역시 몽둥이로 피가 나도록 맞는 것이 적당하다고 판결한다. 나를 욕했다. 그는 그가 살고 싶지 않을 만큼 멸시를 당해야 한다고 판결한다. 전쟁을 벌인 국가의 수장은 폭격에 죽어야 마땅하다. 살인범은 똑같은 방법으로 잔혹한 방식으로 죽여야 한다. 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판단을 얘기하는 것이다. 나에게 일어난 일,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 뉴스로 듣는 일, 이 모든 것에 대해서 남자는 지금껏 공정한 판결을 내려왔다. 


왜 그렇게 열심히 심판을 했을까?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내가 내리는 판결이 현실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누가 그 판결을 듣고 있었을까? 신이 듣고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된 피해자는 오히려 더 분노한다. "다 듣고 있으면서, 왜 그 흉악범에게 벌을 내리지 않는 겁니까?" 신은 다시 변명한다. "악한 일들은 이 세계에서 필연적인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사랑하는 내 자식들이다. " 그리고는 남자에게도 잠시 자신의 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남자도 부모이기 때문에 알고 있다. 자식에게 벌을 내린다고 이 세상이 바로 잡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지옥불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신은 바로 이 세계의 전부이다. 신은 그들로 인해 자신이 지옥불에 잠긴다고 해도 부모이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고 한다.


3. 천국


혼란스러워하는 남자에게 신은 잠시 천국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그곳에서는 죽은 막내딸이 웃음을 가득 머금고 살아서 뛰어놀고 있다. 남자는 기뻐하면서도 또한 심한 자책감을 느낀다.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까, 죽을 때 고통스러웠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은 얘기한다. "저 아이에 마음속에는 아무런 후회도 원망도 없다. 그것이 저 아이가 천국에 있는 이유다. 너도 네 딸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까?"


4. 용서


신의 사랑을 알게 된 후, 남자는 어렴풋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잘못 알고 있었다고 느꼈다. 그저 아버지에게 학대당했던 기억뿐인 줄 알았는데, 부분 부분 신을 만나왔었다.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기억의 파편에서 사람의 모습을 한 신에게 보호받았던 것들이 떠올랐다. 그 어두웠던 시절에서 멀어지기 위해 아버지를 계속 피해왔지만, 아버지 역시 불행하고 어두운 영혼을 가진, 신의 자식임을 깨달았다. 남자는 아버지와 화해하고 싶어졌다. 이미 죽은 사람이긴 하지만 남자의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 아버지가 직접 걸어왔다. 그는 오래전부터 아들을 만나 용서받고 싶어 했었고, 이제야 그 소망을 이룰 수 있었다. 남자는 아버지가 무슨 벌을 받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 오랜 기다림으로 충분히 대가는 치렀다고 느꼈다. 


지금껏 신이 남자를 만났던 것은 단순히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용서의 단계가 있었을 뿐이다. 아버지를 용서한 그보다 더한 용서도 할 수 있는지 물어온다. 그게 무슨 말인지 남자는 알고 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묻는다. 신이 대답한다. "너에게 나의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남자의 손바닥에 무당벌레가 놓였다. 무당벌레는 그 흉악범의 상징과도 같다. 그는 딸을 훔쳐간 자리에 무당벌레 장식을 표식으로 남겼다. 남자가 이 벌레를 죽인다면 아마도 신 역시 그 흉악범에게 그 이상의 벌을 내릴 것이다.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 남자는 주먹을 쥔다. 손이 부르르 떨린다. 흉악범은 벌을 받겠지만, 신은 슬퍼할 것이다. 남자 혼자서 떨어질 수 있었던 지옥불에 남은 가족들도 함께 태워버리게 될 것이다. 손이 열리고 무당벌레는 비틀거리다 날아간다. 남자는 한숨을 쉬듯 말한다.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5. 현실


남자는 꿈에서 깨어났다. 자각이 현실에 맞춰진다. '꿈이 아닌 세상에서 아직 처벌도 받지 않은 흉악범을 용서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딸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데도 나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다, 현실에서 용서는 꿈같은 얘기다. '나를 위해서 남을 용서하라.' 이런 조언도 들었지만 이미 까맣게 타버렸던 남자에게 그런 조언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꿈이 아닌 것도 같다. 왜냐하면 이 불행한 상황에서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듯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꿈을 현실로 불러오는 것은 선택이자 믿음이다. 남자는 신을 만난 것이 단순한 꿈이나 환상이 아닌 필연이라고 믿었다. 용서는 언젠가의 필연이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용서받은 자신의 아버지와는 달리, 그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또 용서받으리라 결심했다. 까맣게 타버렸던 마음에 다시 피가 돌기 시작한다. 그는 꿈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따로 지내던 아내와 자식을 불렀다. 



* When the Lord closes a door, somewhere he opens a window.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혼자서 모든 문제를 감당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절망하지 말자.


* 영화 대사 그대로 쓴 것은 아닙니다. 느꼈던 방향에 따라 조금 각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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