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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고 Aug 25. 2023

[ 콘크리트 유토피아 ] 감상평

고립주의의 한계


*설정: 서울에 대지진 발생 후 유일하게 황궁 아파트 단지만 남기고 다른 모든 건물은 무너졌다. 대한민국 전체가 무너 저 내려 정부나 공권력의 도움도 불가능한 상태이다. 


마음속에 딜레마를 남겨주는 영화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몰아내야 하는 영화적 설정이 나에게 큰 짐으로 느껴졌다. 남아 있는 하나의 아파트라도 생존하기 위해서 그들만의 유대감으로 우선 뭉쳐야 한다. 내 것의 기준을 명확하게 하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한 힘을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분명 가진 것이 없는 외부인은 낙오되어 죽게 될 것이다. 


강력한 리더는 외적인 힘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선택에도 딜레마는 남는다. 이 딜레마를 가려주고 한 방향으로 힘을 결집할 수 있는 자야말로 리더의 자질을 갖춘 것이다. 많은 입주민들이 원했던 리더는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되 죄의식까지 가려줄 사람이었다. 그에 딱 걸맞은 사람이 나타났고 입주민들은 열광했다. 나는 이 리더를 지지할지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공짜는 없기에, 그 리더를 잃을 때면 자신들이 피를 묻히지 않았던 권리도 쉽게 잃어버릴 것이며, 가려졌던 죄의식은 한꺼번에 찾아올 것이란 점이다. 그러니 리더를 선택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며, 그 책임의 무게도 느끼면서 따라야 한다.


감독은 아파트에 전 재산을 올인하는 현 세태에 착안하여, 온 세상이 탐하는 유토피아가 단 하나의 아파트인 세계관을 정했을 것 같다. 이것은 어찌 보면 설국열차의 상류층 칸을 모두가 원하는 것과도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이 세계는 디스토피아이기에 입주민이라도 사는 게 만만치 않고 끊임없는 투쟁에 시달려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몰아낸 사람들과 거부했던 사람들에게 필연적으로 원한을 사게 될 수밖에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대표의 결정이 운명을 좌우한다. 대표는 입주민과 외부인이 서로를 증오할 수밖에 없는 미래를 선택했다. 실은 이 모든 결과가 입주민 내면의 바람들이 모여 만든 것이다. 소유물에는 운명의 무게가 있다. 소유하는 자는 증오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대표에게 책임을 맡긴 후 자신들의 재산이 어떤 무게를 갖고 있는지 잊고 만다. 그러니 어설픈 휴머니즘도 어쩌면 자기 소유에 대한 무감각함일 수도 있다.


그 몰락한 세상을 좀 더 확장하여, 살아남은 국가와 멸망한 나머지 세계로 대입해 볼 수도 있다. 세계대전을 치르던 시기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 중심으로 안정되었던 세상은 점차 각국의 노선대로 찢어져가는 느낌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해서 이미 남북한 군전력은 완전 비대칭 상태가 되었다.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에서 사는 세계인이 더 많다. 우리의 주변은 여러모로 암울하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대한민국은 유토피아일 것이고, 우리는 앞으로도 이 땅과 내 재산을 지켜야 한다. 디스토피아에서 몰려올 자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당연히 그들에게 누가 주인인지를 먼저 알게 해줘야 한다.


결국은 문을 열어야 한다. 외부인을 그저 '바퀴벌레'라면서 기피하면 다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고립주의(쇄국주의)는 최초에는 아늑할지 몰라도, 집단의 생존 가능성은 점점 떨어지게 된다. 이 영화도 비극이 될 거라고 누구나 예상했을 것이다. 우선 주인다운 '의지와 힘'을 가질 수 있다면 포용의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서 내 재산을 함께 쓰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주는 것이 아니라 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지금 국가 차원의 얘기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것이 분명한 이 국토와 인프라와 자본을 동포들/이주민들/난민들/탈북자들 등등이 찾아와 공유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바퀴벌레가 아니다. 그들도 인간이고 우리도 인류애로 품어줘야 할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 자신도 그만한 가치를 갖추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시민의 기본 자질은 의무와 권리로 정리된다. 그들에게 적절한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 국가의 법을 지키는 것, 문화를 아는 것, 정치 체제를 수용하는 것, 그리고 한국의 특성상 군역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 등등이다. 현실을 보면 이런 의무와 권리를 외부인에게 정확히 들이대지 못한다. 어쩌면 내부 국민들에게도 이 기준을 일관성 있게 적용하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


정리하면, 이 영화는 내 재산이란 게 얼마나 중요하고, 또 처절하게 지켜야 하는 것인지 디스토피아의 예시를 들어 보여주었다. 다만 이런 재난 상황에서도 아파트가 고립주의가 아닌, 시민권의 원칙을 세워서 개방주의로 갔다면 더 강력한 집단으로 오래 생존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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