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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고 Sep 11. 2023

노인과 바다

허무과 영원

2021년. 친애하는 동료들에게 주는 글.


바다를 보고 싶어 아이들을 꼬드겨 가까운 곳이라도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침에 온 세상을 덮은 해무가 그냥 해무가 아니라 미세먼지 덩어리라는 것을 알고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전에 읽다가 말았던 이 바다의 이야기를 외출을 대신하여 읽어보기로 했다. 길지 않은 내용 안에서, 수 일간 주인공 노인이 겪었을 고통과 흥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각은 바다에 나가기 전에 이 책을 읽은 것이 다행으로 느껴진다. 나중에 너른 바다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하나라도 더 생겼으니 말이다.


사실 이 유명한 소설을 오늘 처음 제대로 읽었다. 어렸을 때 독서를 열심히 하던 둘째 형이 친절하게도 나에게 많은 책들의 줄거리를 다 얘기해 줬다. 중학생이었던 형이 이 책을 설명해 주길, "이 소설은 엄청 단순한 이야기야. 어떤 노인이 며칠 간의 실랑이 끝에 큰 물고기를 잡았어.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 머리만 남기고 다 뜯겨버렸지 뭐야?"라고 이야기했다. 웃고 있는 형의 표정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 이 책은 '웃긴 이야기' 정도로 기억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하다. 오늘 이 책을 보면서 한 번도 웃기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저 인생사의 허무하고 잔혹한 예시로 보였다. 잡았다가 놓쳐버린 물고기의 몸통은 우리가 소유한 재산과 명성같이 느껴진다. 늙음, 혹은 죽음을 앞에 두고서 그들은 다 헛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 노인의 최고의 투쟁, 어쩌면 최후가 될 도전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을 얻기 위해, 이 허무한 세상에 대적하여 인생을 건 사투를 벌인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것, 헛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이를 보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마음이 사회적 기준에 얽매여 있어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을 찾을 수가 없다. 망망대해 어둠 속에서 조각배에 의지해 미지의 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겨우 보이는 것이다. 모두가 늙었다고 어부로서는 끝난 거라고 무시해도, 노인은 여전히 최고의 순간을 기다리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믿음과 소망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노인은 사랑하는 바다가 그에게 기회를 줄 것임을 믿었고, 기회가 왔을 때는 오직 그에게 온 대어 한 마리만을 소망했다. 노인은 자신의 가치를 그 마음 안에서 찾았고, 그리고 성취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증명할 수 있었다. 나이가 더 들어 죽음을 맞이한대도 그의 삶이 허무하게 소멸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겨난다.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것은 모두 군더더기다. 우리의 삶에서 눈에 보이는 재산이라고 좋기만 한가? 명성은 좋지만 비방은 괴롭다. 재물은 좋지만 뒤처리는 머리 아프다. 암흑 속으로 들어가 이 모든 군더더기를 지워버리고, 단 한 가지 소망에 집중해야 한다. 자신이 그 소망을 감당할 수 있음도 믿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다. 사명을 잃어버리고 군더더기 재산에 속아 마지막을 향해 전진하다 결국 '공수래공수거'로 사라지는 것이 보통의 인생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순수한 소망을 잃어버렸나? 대어 낚는 소망을 품은 노인이 결국은 진짜 어부다운 일을 해내듯, 우리 각자를 자기답게 만드는 소망도 있을 것이다. 의사를 의사답게, 원장을 원장답게, 또는 가장으로서, 자식으로서, 리더로서, 그 외에 어떤 분야에서든, 그 사람에게 걸맞은 소망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소망을 품을 수 없는 일에 얼마나 자신을 소모해 버리는가. 부지런하다고 꼭 잘 사는 건 아니다. 욕망을 채워나간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죽어서 허무할 삶은 살아서도 허무하고,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을 삶은 살아서도 충만하다. 우리는 그 영원성을 획득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 기회가 소망에 맞추어 반드시 찾아올 것임을 먼저 믿어야 한다. 일상적으로 얻고 잃는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말자. 그까짓 고깃살이야 상어 떼에게 다 뺏겼대도, 어부와 소년과 독자의 가슴에 남긴 희망은 언제까지고 빼앗기지 않는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이런 희망의 이야기를 쓰고 노벨상까지 받았음에도, 자신이 노인이 되었을 때 스스로를 비관하고 결국 자살을 택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이야기에는 진실성이 부족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헤밍웨이는 스스로 어부 노인과 같은 마음의 투쟁을 계속해왔을 겁니다. 그도 자신의 가치를 되찾고 싶었고 소망과 믿음을 지키고자 했을 겁니다.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마음은 늘 괴로울 거라 생각합니다. 볼 수 있는 깊이와 도달할 수 있는 깊이가 일치하지 못할 때 마음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죠. 대부분 날의 헤밍웨이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영원을 택하였지만, 어떤 날의 헤밍웨이는 그 싸움에서 허무를 택하고서 방아쇠를 당겼을 겁니다. 결과는 죽음이고 그렇게만 보면 패배한 인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100승 1패의 인생이었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면 오히려 탁월한 삶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어부 노인처럼 단 1승만 거두어도 성공한 인생이지 않을까요?



경제적으로 위축된 현실 앞에서 자신의 가치마저 의심하게 된 많은 동료들에게, 또한 같은 좌절감을 느끼는 저 자신에게도 반드시 큰 물고기와 같은 기회가 올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둠 속의 고요한 바다에서 작은 소망이라는 조각배를 타고서 물고기 떼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행운이 아닌 필연으로,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 물고기 떼가 무엇인지는 각자의 깊은 바닷속에서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단 1승의 대박을 위해 믿고 소망하며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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