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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고 Sep 13. 2023

사랑을 생각하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랑을 생각하다 (2005) - 파트리크 쥐스킨트 작


* 에세이 내용을 참고로 제 의견을 정리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개인에게 가장 특별한 경험이자 감정이 되는 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의 존속, 개인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나 감정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사랑은 매우 특별하다. 사랑은 열망을 동반하며, 그 열망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성향을 바꾸어, 궁극적으로는 그의 존재 자체를 변화시킨다. 존재가 변한다는 것은 운명까지 바뀐다는 것을 뜻한다. 사랑은 운명을 바꾼다. 이렇게 중요한 감정이지만, 누구도 사랑의 정의를 명확하게 내릴 수 없었다. 그저 사랑의 형태를 열거하며 이런저런 비평을 할 뿐이다.


그리스 철학에 따르면 에로스는 신이면서 또한 인간을 감싸는 욕망이다. 욕망이란 자신에게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인식에서 시작한다. 에로스 신은 빈곤도 풍요도 아닌 중간쯤에서 새로운 창조를 위한 욕망을 품고 있다. 그러니 인간이 에로틱한 사랑을 느낄 때, 정서적 도취와 성적 만족이라는 다소 소모적인 상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창조적인 생산을 통해 좀 더 영구적인 상태에 도달하려는 에로스의 의도가 함께 할 것이다. 창조적 생산물은 어떤 것들인가? 부부는 다음 세대의 인간, 아기를 생산할 것이다. 예술가들은 사랑의 영감을 투영하여 작품을 완성할 것이다. 이 생산물들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생이다. 바로 죽음의 극복이다. 그러니 사랑의 충동을 통해 생성을 도와주는 에로스는 반대로 소멸을 추구하는 타나토스와 충돌한다.


최초의 시작에 어떤 실물이 탄생하기 전부터, 사랑은 이미 중요한 것을 창조한다. 사랑을 해봤다면 그 감정의 반대가 미움이 아니란 것은 충분히 알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대립되는 감정의 차이를 인지한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자신이 슬프지 않다는 것을 안다. 어려운 일을 할 때 그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인지할까? 아니다.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 무관심하지 않다, 이렇게 인지한다. 즉 사랑을 시작하자마자 그 대상과의 '관계'를 창조해 낸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었다.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과 물론 피상적 인간관계는 갖게 된다. 에로스적 관점에서 열망도 충동도 부족한 이런 관계는 신이 인정하는 관계가 아니다. 사랑이 더해지고 대상과의 관계는 그만큼 깊어지며, 열망이 그 깊이만큼 무겁게 채워지면서 에로스도 최초의 관계 창조를 도와준다. 또한 우리가 사랑하는 동안은 그 관계의 영원함을 느낀다. 사랑은 시작부터 창조의 과정이 되며 또한 영생의 길이 된다.


한편 에로스와 대립하는 타나토스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파괴와 소멸의 욕구를 상징한다. 하지만 일상적인 삶에서 생존과 번영의 욕구는 느낄지언정, 죽음과 소멸의 욕구를 느낀다는 것은 잘 공감이 안된다. 사실 소멸의 욕구는 교묘한 형태로 우리 마음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력하던 것을 포기하려는 것, 원하는 것에서 등을 돌리는 것, 증오와 투사를 놓아버리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는 것, 이런 것들은 실질적으로는 죽음을 가까이하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마! 하고 싶은 것을 해! 미움을 버려!" 단지 이런 명령만으로 자신을 죽음에서 끄집어낼 수 있을까?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낼 수 있는 것은 선언적 의지가 아닌 사랑이다. 꼭 모든 대상과 모든 문제에 사랑이 투영될 필요는 없다. 다만 어떤 한 사람이라도 어떤 한 대상이라도 깊게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의 길 위에 한 발짝을 더 내딛는 것이다. 나는 지금 누구를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살아 있기는 한가? 물론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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