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딸의 생일, 꿈, 관계의 균형

정신의 균형

by 송고

딸의 즐거운 생일날 아침에 나는 아내와 다투는 꿈을 꿨다. 본래 일찍 일어나 딸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꿈속 아내의 행동에 실망한 나머지 그 의욕마저 사라져 버렸다. 새벽 6시부터 이미 반쯤은 깨어 있는 상태였지만 그저 듣기에나 좋은 말들을 써 내려가고 싶지 않아 졌다.


흔히 어떤 언어적 공격이 상대에게 받아들여졌을 때, '긁혔다.'는 표현을 쓴다. 꿈 자체가 전혀 얼토당토않은 내용이라면 나는 오히려 웃으면서 그 꿈을 조롱했을 것이다. 하지만 꿈은 마음속 자그만 약점을 파고들면서 현실성 있는 영상을 보여주고, 그 꿈을 반추해 보면서 내가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자체가 꿈의 공격에 긁혀버린 셈이다. 나를 대하는 아내의 특정 태도는 현실에서처럼 꿈에서도 수용하기 힘들었던 것이고, 그걸 마치 현실에서 발생한 때처럼 느끼는 것이다.


이 꿈에 특별한 게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꿈은 그저 아내와 딸에 대한 내 시각의 대조를 보여줬을 뿐이다. 오늘 0시를 기해 딸의 생일이 되었고, 나는 홀로 축하를 보내며 딸에 대한 사랑과 신뢰, 기대 등을 품고 잠들기를 원했다. 물론 여기에 다른 가족, 예를 들어 아내에 대한 축복까지 곁들일 여지나 이유는 없었다. 의식에 세계에서는 당연히 '모든 것'이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것은 의식이 제시하는 일부의 거짓이다. 의식의 바깥은 거짓을 포장하지 않는다. 딸에 대해 깊이 눌렀던 인위적 압력이 작용하여 그 옆에 멀쩡히 있던 아내를 향해 파동이 부딪히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정립은 인생의 중요 과제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그 이면에서 상호연관성이 작용한다. A라는 친밀한 친구가 생기면 B라는 적대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권위적인 아버지와 도피성의 자식은 짝지어진다. 순종적인 어머니를 보고 자란 아들의 아내는 자기애적이다. 가부장 세계의 여성 후손들은 남성에 대한 혐오감을 품는다. 남성 혐오를 한 세대 겪은 뒷 세대는 여성 혐오로 역공한다. 내 딸에게 힘줘서 사랑을 밀어 넣으며 아내와의 껄끄러운 부분에는 더 큰 균열이 생긴다. 그래서 특정한 욕망에 너무 큰 의지를 투사하지 않는 균형감이 필요하다.


정신에 있어 균형감이란 무엇일까? 그저 누르고 싶은 것을 누르고 나머지 밀려 나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일까? 아니면 서로 누구도 상처 입지 않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마음일까? 이 것을 확실히 정리하기엔 더 오랜 관찰과 경험이 필요한 듯 하지만, 본질은 소망의 자연스러운 실현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째는 내가 무언가에 마음을 줄 때에는 반드시 다른 영향도 있음을 알 것, 둘째는 너무 간절하고 너무 절실하지 않아도 이루어져야 할 것은 자연스레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질 것, 셋째는 예상치 못한 영향에 대해서도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할 수 있는 행동을 할 것, 이 정도가 정신의 균형감을 지키는 길이 되겠다.


사랑하는 내 딸을 떠올리며 생일을 축하하는 느낌을 다시 품는다. 그러면 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따뜻한 마음으로 다시 아내에게 전화한다. 아내는 "오래전 그날 배 아파서 고생 많이 했는데 뭐 선물이라도 없냐?" 고 한다. '나도 고생했다.' 라는 식으로 응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좀 더 균형을 유지하는 말은 "내가 더 많이 벌어서 갚아줄게." 정도일 것 같았다. 아내는 꿈에서처럼 나를 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나쁜 꿈을 현실에서 계속 이어갈 때의 모습일 뿐, 사실 그런 꿈은 이미 마음 속에서 다 잊었다. 오늘 집에 가면 이 편안한 마음으로 딸에게 주는 축하 편지를 제대로 작성해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생활의 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