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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서브스턴스]

You are one

by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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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성 내용은 없지만 영화를 봐야 이 설명이 이해가 될 듯하네요.


감독을 칭찬하고 싶다. 왜냐하면 여성들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세태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스토리는 못생긴 여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예뻐지고 (혹은 그 반대)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면서 '외모보다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라는 식의 메시지로 흘러가는 방향성이 대부분이다. 이 영화는 못생긴 오리지널과 아름다운 카피가 동시에 세상에 드러났을 때, 오리지널이 카피가 서로를 보면서 자신에 대하여 어떤 감정이 생길지에 초점을 두었다.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꼭 고어한 분장이나 피칠갑 따위가 필요한 건지는 감독 특유의 판단이겠지만, 메시지를 따분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아 강렬한 상상력을 동원했다고 본다. 당연히 파국으로 치달을 것을 예상했지만, 어느 정도 교훈적인 선에서 정리할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끝까지 달릴 줄은 몰랐다. 오히려 그게 마음에 든다. (약간의 남성 혐오가 드러난 것도 용서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남성들의 성적 시각에 동조하는 여성들의 자기혐오도 강렬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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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무어 캐스팅이 너무 잘 되었다. 누구나 기억하는 엄청나게 잘 나갔던 여배우, 지금은 그에 비해 한물 간 사람, 이 영화의 오리지널에 딱 맞는 역할이다. 남성적 시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책받침 여신 중 하나였던 데미무어가 이제 피부도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되어 버린 것이 안타깝다. 실제 데미무어의 자기 인식과는 관계없이 많은 남자들은 젊은 데미무어를 욕망한다. 그러니 그 욕망에 맞지 않는 현재의 데미무어는 당연히 과거의 데미무어보다 열등하다고 가치를 매겨버린다. 사실 여자들도 비슷한 평가를 하고 있다. 만약 대중들의 이런 시선과 욕망에 데미무어 또한 감정적으로 놀아나고 있다면, 아마도 영화 속 오리지널처럼 젊고 예쁜 카피가 되기를 욕망할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다보니 영화에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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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관통하는 배우들의 감정은 자기혐오다. 카피와 오리지널은 분명 하나, 서로가 자기 자신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럼에도 영혼이 다른 완전한 별개의 개체로서 존재한다. 즉 기억과 경험, 생각은 각자의 것이 된다. 이것은 자기 인식에 대한 일종의 비유이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라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기에, 나라는 존재는 지금 혹은 과거 한 시점이 아니라 온 시간을 합쳐서 여러 변화하는 주제가 합쳐진 하나의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는, 데미무어는, 혹은 영화 속 오리지널은 오로지 사랑받던 '외모' 한 가지 주제에만 시선이 고정되면서 늙어가는 자신에 혐오감을 느끼고 자연히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을 별개의 존재로 분리하는 것이다. 과거에 인기 있던 연예인이 지금은 인기가 없더라도 그 시절을 거쳐 관록이란 것이 생긴다. 과거 꽃미남이 지금은 보통의 아저씨가 되었어도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이성 인맥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외모 얘기만이 아니더라도 과거의 영광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형태의 가치로 전환되어 지금의 내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한 가지 가치에만 매달려 봐야 지금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뿐이다.


조금만 더 철학적으로 들어가 보자. 지속적으로 나오는 대사, Remember. You are one. 카피와 오리지널은 결코 둘이 아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모두 내 안에서 공존한다. 젊음과 늙음은 둘이 아니다. 착한 나와 이기적인 나는 함께 존재하는 하나다. 부유한 나와 초라한 나는 모두 같은 모습이다. 우리는 그것을 종종 잊고 원치 않는 한쪽을 거부한다. 시간에 따라 변화한 내 모습은 모두 나라는 존재에 속해 있고, 잃는 것이 있다면 얻는 것도 있다. 그러니 사회의 고정된 가치 판단과 타인의 기호에 놀아나지 말고, 그 변화에서 자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취하면 얼마든지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다. 이 영화도 감독의 '내 방식대로 간다.' 이런 식의 전개가 살짝 과도하면서도 딱 좋게 느껴진다. 나 자신에게 이 영화의 메시지를 대입해 전개해 보자면, 난 영화처럼 과거 지향적이 아닌 미래 지향적으로 좀 더 긍정적으로 이어가 보고 싶다. 지금도 좋은 시절이지만, 미래에 더 좋은 시절이 올 것이다. 그러니 Remember! 좀 늙으면 어떤가? 시간을 잃었으면 어떤가? 고생 좀 하면 어떤가?


앞으로 오게 될 더 좋은 삶도 지금의 나와 하나인데.

We are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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