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의 거절
부처님께 어떤 외도(다른 종교인)가 비난을 퍼붓는다.
그리고 그는 실컷 비난을 한 후에 돌아갔다.
부처님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담담히 계셨다.
옆에 있던 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왜 저 외도를 꾸짖지 않으셨습니까?
부처님이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네게 선물을 주었다 하자.
그 선물을 받을 사람이 그 선물을 받지 않으면 그 선물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그 선물의 주인은 선물을 거절한 사람의 것인가?
아니면 그 선물을 보낸 사람의 것인가?
불교에 대해서는, 나는 이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
이 이야기의 교훈과 같이 나는 타인이 나를 비난할 때,
그 내용이 딱히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굳이 반박하지 않고 어느 정도는 들어주는 척하는 편이다.
요즘은 공감이 중요한 시대니 이해하는 티는 내지만 속으로는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감정의 동요가 없진 않지만,
이후 계속 집착하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다면, 나는 그 '선물'을 받지 않은 것이고,
나에게 더 이상 영향을 줄 수가 없다고 믿는다.
어릴 때 우리가 장난으로 많이 하던 "반사~"가 부처와 같은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편하게 흘려보낼 수 없는, 마음을 촘촘하게 옭아매는 비난과 갈등도 있다.
마치 인질극처럼,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동조나 굴복을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으면
내 자산뿐만 아니라 주변인에게도 타격과 불편을 끼치는 상황이다.
아무리 좋게 무마하려 해도 내 머리로 생각하기엔 불필요해 보이는 다툼으로 시간낭비를 하는 것이다.
나는 깊이 생각해 봤다.
부처처럼 흘려보낼 방법이 없을까?
어떤 생각의 프레임으로 인지하는 것이 이 다툼을 흘려보낼 방법이 될까?
따지고 보면 부처도 그냥 무시하면 될 상황이라 무시한 거겠지,
극단적으로 상대가 "대답 똑바로 안 하면 죽여버린다!" 이런 상황이라면
"반사~" 이딴 소리나 할 수 있을까?
나의 마음속에 부처만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신을 믿는다. 그게 더 크다.
하지만 신이라는 말은 늘 거창하게 느껴지니 '필연'이란 익숙한 말로 표현한다.
내 인생은 우연히 아닌 필연들의 연속으로 보인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그 나름의 의미가 있으리라.
상황에 따른 괴로운 감정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어떻게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소화해 내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회피하기 어려운 문제에 맞닥드리면,
'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내 운명인가 보다.'
라고 여기면서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쁜 일이 나를 새로운 인생으로 이끌어준 경험들 덕택이다.
마음 중심을 잘 지키면서 믿음을 가지고 문제를 직면하는 것, 그게 내 역할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문제라면 이건 내 부족함이 있었다기 보단,
신이 나에게 필요 없는 선물을 잘못 준 거다. 즉 필연이 아닐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 어떤 잘못된 순간적 생각이 이 모든 흐름을 바꿨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인데, 이 상황은 나에게 의미도 없고 도로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로 마음을 모아서 이 얘기를 했다.
"내 것이 아닙니다."
이 생각을 하고서 놀라울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차피 모든 일들은 주어지는 것이니 다시 회수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같은 인간의 평판만이 거절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이 그를 닮은 마음을 나에게 주었기에,
그가 나에게 준 것을 받을지 돌려줄지 선택할 권한이 나에게도 있다.
거절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자신하고 내일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되면 어쩔까 싶기도 하지만,
아니다, 지금의 감은 다르다. 알아서 해결될 것 같다.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같은 요청을 또 하면 된다.
"내 것이 아닙니다. 내게는 더 좋은 것을 주세요."
내가 아는 한 신은 아무리 요청이 반복되어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