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와 Do
아이가 품사를 공부하면서 영어 동사(verb)에 대해 헷갈려하길래 동사의 두 가지 형태에 대하여 설명을 해줬다.
"동사는 크게 Do와 Be 가 있어. 너에게 움직임을 요구하고 싶은데 단어가 기억이 안 나면, 손짓발짓 하면서 Do it!이라고 하면 다 통한다구. 그러니 Do는 모든 움직임을 표현하는 동사에게 조상님이야. 그런데 어떤 사물이 어떻게 움직이나 가 아니라 있다/없다를 표현하고 싶으면 Be로 표현하면 돼. He is, It is, You are, I am, 이렇게 앞에 대명사나 명사와 be 동사 뒤의 말은 동일하단 거야. Daddy is handsome. 하니까 이해가 되지? Be는 있다/없다의 조상님이야."
아이 수준에 맞추느라 틀린 말도 있고 설명이 길어지면서 아이는 상당히 지루해했지만, 그래도 그다음 sentence로 확인 점검해 보니 아이도 어느 정도 이해한 듯하다. 집중 안 한다고 핀잔 들으면서도 아빠랑 계속 같이 공부하려는 걸 보니 각오만은 대단한 것 같다. 영어는 엄마가 훨씬 잘 하지만 그래도 아빠가 가르쳐주는 게 좀 더 편한가 보다.
지난 주말에 쇼핑몰에 가서 발견한 고슴도치 인형, 3년 전 잃어버린 다른 고슴도치 인형을 여전히 그리워하던 차에 마침 매장에서 꼭 닮은 예쁜 것을 발견하자 눈이 돌아갔다. 엄마는 한 번 잃어버린 인형이라며 구입을 반대했고, 그래서 나에게 징징대면서 매달리기에, 뭐라도 잘해놓고 말하면 엄마도 마음을 돌릴 거라고 말했다. 뭘 잘해야 하냐고 묻길래, "흠, 시험 같은 걸 엄청 잘 치거나?" 이랬더니 대뜸 "그럼 학원 시험(monthly test)에서 만점 받아내면 사주는 거야!" 이러면서 매일 자기랑 30분씩 공부하자는 것이다. 어제로 월/화 이틀 공부했다. 산만한 건 여전해도 동기가 명확해서인지 전보다 끈질기게 붙어있으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Be 동사 설명하면서 생각한다.
'넌 이미 고슴도치랑 함께 있구나. Hedgehog is yours.'
사람들은 자신 혹은 타인 혹은 사회의 많은 것들이 움직이는 형태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Do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아이도 첫 고민도 어떻게 엄마의 마음을 바꿀까에 있었다. 그러나 존재의 본질은 항상 Be에 있다. 아이가 시험을 잘 치고 싶어 한 거, 나와 붙어서 핀잔을 들으며 공부하는 것, 이 과정을 전과 달리 즐겁게 먼저 아빠를 불러서 하는 것, 왜 가능할까? 앞의 것은 본질을 헷갈리게 하는 Do 일 뿐이다. 진짜 본질은 아이의 마음속에 고슴도치 인형이 Be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빠의 마음속에도 아이가 기뻐하면서 엄마에게 시험 성적을 얘기하는 모습이 Be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많은 소망들은 Be의 형태이다. 그리고 고민들은 Do의 형태이다. 둘의 가치를 비교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현실에 존재하기 위해선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있는 것이라야 있을 수 있다. 지금은 없다고만 생각하면서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다. 존재는 과거-현재-미래 모든 것을 아우른다. 내 마음에 품은 수많은 Be들, 그것이 나를 이끌도록 하려면 그 존재가 나와 함께 있음을 믿어줘야 한다. 과거에 나를 기분 나쁘게 했던 일들, 불안하게 만드는 일들, 그 형태에 얽매여 있으면 내 존재는 나쁜 것에 고정된다. 집중은 과거가 아닌 현재 마음속 be에 하는 것이다. "I am..." 뒤에 말은 얼마든지 좋은 것으로 끌어올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해 보는데, 내 딸은 엄청 시험을 잘 치고 엄마에게 당당하게 고슴도치 인형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엄마는 깜짝 놀라면서 아이를 칭찬하게 될 것이고, 아이는 아빠가 집에 들어왔을 때 펄쩍 뛰어오면서 인형을 보여줄 것이다. 그게 내 마음속에 딸의 모습이 존재하는 형태다. 한편 나는? 내 마음속 Be는 늘 똑같다. 가족들에게 존경과 존중을 받는 가장이다. 나는 가족들과 깊이 있는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나는 베풀 줄 아는 부자다. 나는 현명한 친구다. 나는 믿음직한 리더다.... 그 외에도 많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내 안에서 진실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본질이기에 나의 현실 형태를 이끈다. 사람들이 (혹은 가족이라도) 나를 평가할 때는 현실 세계에서 보인 모습을 나의 최종 형태라고 착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을 이끄는 것은 내 안에 본질로서 존재하는 최종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