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녀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별로 평이 안 좋은 것을 알면서도 공짜라길래 봤습니다. 영화는 전편 '검은 사제들'에 비해서도, 짜깁기 영화라고 본 '파묘'에 비해서도, 각 장면의 서사적 설득력이나 배우 캐릭터의 몰입감이 무척이나 부족하네요. 특히나 작가가 주문한 건지 감독이 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담배 피우고, 욕설 쓰면 거친 캐릭터가 완성되는 줄 여기는, 혹은 장면을 긴장감 있게 만드는 줄 아는 역량이 개탄스러웠고, 또한 에일리언 3의 마지막 명장면을 개연성 없게 베껴서, 악마를 자궁에 넣었다고 우기며 셀프 화형식 (에일리언 영화는 아마도 용광로였죠?) 하는 것은 웃기기까지... 하지만 영화를 비판하려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영화를 통해 악에 대하여 떠올린 한 가지 근원적 의문이 있어서여요.
악이 인간에게 스며들어 인간계를 망치려는 시도에 있어 그 근원이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입니다. 교리적, 문학적으로는 보통 유일신의 권위에 대한 불복종, 혹은 신이 아끼는 인간에 대한 질투심이 악마 심리의 근원이라고 보는 것 같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요? 빙의한 사람을 두고 잡귀가 들었다고 하는데, 잡귀를 악의 일부라고 쳐도 되겠죠? 천상과 지옥의 악마가 굳이 인간에게 온 것은 인간의 정신이나 육체가 악마에게도 필요해서 찾아온 것이겠죠. 육신을 갖게 되고, 어떤 인간 집단에 속한다고 하는 자체가 자기 존재의 필요불가결 요인이기에, 그것을 찬탈하려는 시도를 하는 셈이고요. 영화처럼 빙의해서 자신을 죽이는 것은 악마에게 무의미하고 따라서 실제 목적일 수 없습니다.
예수와 악마를 대비시키는 설정이 많죠. 성경에서도 둘은 지혜와 권능을 경쟁하였고, 이 영화에서는 동정녀 마리아가 잉태한 예수 - 검은 수녀의 자궁에 들어간 악마, 이런 식으로 교차시키면서, 이 경쟁이 영원한 영적 다툼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은 바로 '육체'입니다. 신적 권능에 걸맞은 수준으로 본다면 신과 악마가 서로 행성을 쓸어버리고 별을 부수는 등의 우주적 사건으로 다투어야 할 것 같지만, 그에 비해 훨씬 소박한 개개인의 육체를 통해 대리전을 치르는 것이 이 경쟁의 핵심이란 것이죠. 처음부터 예수로 태어나고 악마로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대신 점점 그들을 닮아가는 것이죠. 그렇다면 악마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걱정하기 전에, 우선은 우리의 육체를 선한 정신의 통제 아래에 두는 노력을 하는 것이야 말로 악마를 멀리하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운동을 할 수 있는 한 해보니,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라는 말의 순서가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적인 건강의 수준이 아닌, 자신을 위한 노력, 신체적 자기 통제의 측면에서 봐주면 될 듯합니다. 육체적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좋은 신체를 갖는 자체에 집중하고 실천하면, 절제의 미덕과 긍정의 미덕이 발현됩니다. 이것이 선을 끌어들이는 과정이고 결과적으로 퇴마 의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잘 지키자는 생각은 많이 하지만, 몸을 잘 지키자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선의 길을 가고 싶다면, 악을 멀리 하고 싶다면, 우선은 내 육체를 악에게 넘겨주지 않도록, 그리고 선 혹은 신의 통제 아래 두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영화의 검은 수녀처럼 줄담배 피우고, 쌍욕하고 그러면 안돼요. 오히려 사탄 들려요^^
* 종교적으로 교리적으로 많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이런 논리전개도 가능하구나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