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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의 힘

by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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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면서 눈물 대신 콧물이 줄줄... 이 애니는 회상 씬이 절반이라 이야기가 산만해질 수도 있었는데, 편집을 기가 막히게 잘한 것 같다. 잦은 장면 전환에도 집중이 끊어지지 않았고, 송태섭이 집념을 발휘하는 과정이 잘 빌드업되어서, 모든 인물들 간 감정의 흐름이 타당하게 흘러간다. 이를 지켜보며 인간의 감정 혹은 의지는 한순간이 아닌 인생 전 과정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과거 회상을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돌파할 힘이나 깨달음을 얻는 전개는, 특히 일본 만화에서 흔하게 보는 것 같다. 그런 시나리오가 내포하는 것은 인생이 가진 통일성이다. 인생에는 어떤 주제가 있고 그 주제에 맞추어서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발생한다는 설정이다. 이는 불교의 연기론, 일본의 신토 정서와도 어느 정도 부합하는 인생관일 듯하다. 예를 들어 송태섭이 농구 롤모델이었던 형을 상실했다는 과거의 나쁜 일은, 여러 회상의 과정을 거쳐, 현재에는 그 빈자리에 자신을 롤모델로 채워 넣을 수 있게 하는 연계성을 품고 있다. 첫째 아들을 잃어서 무기력해진 엄마는, 그의 정체된 갈망을 훗날 둘째 아들의 집념에 호응할 에너지로 전환할 기반을 갖게 된다.


여기에 선악적 판단은 미뤄놓는 것이 좋다. 지금이든 혹은 시간이 지나 회상하면서든, 발생하는 일들을 그저 그대로 수용하면 된다. 각자의 잠재된 소망과 인생 과제에 대하여 그 일들과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에만 집중하면 많은 일들의 숨은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스토리는 한 주제에 대하여, 과거의 사건들과 현재의 사건들 간의 연관성이 맞아떨어지며 그 가치가 튀어나오는 내용인 것 같다. 이 경험과 집중과 발견의 서사만으로도 주요 시나리오가 완성된다. 거창하게 일본 국민성이나 신토에 대입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만화와 같은 미디어 상에서 일본 감성은 그런 느낌이다.


어쨌든 이런 구성의 시나리오에 우리가 감동하는 이유는, 우리 역시 '기억과 재발견'에 의해 현재를 헤쳐나갈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제일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내가 지금까지 여길 어떻게 올라왔는데!', 나를 응원하는 부모님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꼭 웃게 해 드릴게요.', 집에 있는 아이를 생각하며 '너에게는 좋은 것만 물려줄게.', 옛날 무시당한 기억 속에서 '이제 똑같은 일은 반복되지 않아.'.... 이런 식으로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쓰고 보니 일본 만화 한 편이 그대로 나온다. 내 평소 생각 역시 이렇다. 우리 인생은 단지 우연의 연속이 아니다. 한 사건은 현상만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내 의지, 소망, 망상, 절망, 슬픔 모든 것과 연관되어 끌어들여진 것이다. 그러니 항상 관찰하고 찾아보자.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그 해답은 언제나 나의 영역 안에 있음을 믿자. 모든 일은 나에게서 연관되어 일어났던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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