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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소녀를 살려내다.

자고 있는 나의 것

by 송고

*다소 작위적인 성경 해석에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마치 사람 간의 보이지는 않는 인연의 끈처럼, 일어났던 일들은 각자 개별적인 것 같아도 나름의 연관성을 갖고 발생합니다. 내 주변 세상의 사건들이란 우연과 무작위의 연속이 아닌 어떤 의미를 중심으로 그것을 드러내기에 필요한 일들이 순차적으로 발생했다고 할 수 있죠. 그런 것을 '이야기'라고 합니다.


나는 비슷한 맥락의 사건들이 나를 괴롭히는 경험을 종종 했습니다. 나름대로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겨우 해결해 놓으면 또 비슷한 문제가 반복해서 찾아오는 것이죠. 이 의미의 세계, 이야기 속에서 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 사건을 통해 내가 진정을 습득해야 할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손해를 입었든, 얼마나 괴로웠든, 얼마를 썼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건으로 내 존재가 어떻게 달라졌는가입니다. 보통은 '성장'이라는 말로 축약하지만, 때로 성장이란 관념은 존재의 변화무쌍함에 비해 다소 편협한 심상처럼 보입니다. 현재의 시각에서 보기엔 악해지는 것 혹은 약해지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인생에 도움이 되는 변화일 수 있기 때문이죠.


나는 조급하지 않은 것 같은데, 나를 괴롭히는 일들은 조급하게 반복됩니다. 나는 그것을 불운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 인생이 겪어야 할 일들이 곧 종말을 향해가기에 이 세계가 그만큼 서두르고 있는 것일 테죠. 정확한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번이 인간적 생애의 마지막일 수도 있겠단 직감이 듭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세계가 나를 배려하는 것에 가깝겠죠. 꼭 불교적 윤회를 떠올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종교관 내에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전보다 조금 더 진지하게 내 마음가짐에 대해 고민해 봤습니다.


하지만 세계가 던지는 사건에 그저 반응하는 역할만 하고 싶지 않으니, 나 역시 스스로에게 오늘 성취하고 싶은 과제를 하나씩 던져 봅니다. 오늘은 무엇이든 나에게서 죽은 것을 살려내고 싶었습니다. 신약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그 세계에서 '나'로서의 역할이죠. 이 방대한 이야기 중 죽은 소녀가 아버지의 간청과 예수님의 말씀으로 살아났는데, 살아난 이유는 황당하지만 사실은 그 소녀가 죽었던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세계의 주인공, 그 세계를 움직이는 the One인 예수님이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인식 혹은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실상 여기서 중요한 역할이 아닙니다. 이야기는 설계자의 의지를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내 인생이라는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나입니다. 의미의 세계에서 항상 주인공은 의미를 부여할 권한이 있는 자신입니다. 나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나 역시 죽었다고 여기는 것을 살려내어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한 때 내 것인 줄 알았지만 이제는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것들, 나는 (사랑, 용기, 지혜)와 같은 정신적인 것들을 떠올립니다. 그것이 나에게서 부족하다는 인식조차 죽음을 선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들은 내 안에 넘치게 있지만 단지 명령과 함께 깨어날 때를 기다고 있습니다. 마음이 몽롱하면서 가장 경건해지는 지금 새벽 시간이라서 이 믿음이 정말로 실현되는 것을 느낍니다.


'일어나라, 소녀야.'


이 이야기의 세계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은 없습니다. 반복되는 귀찮은 사건들은 먼저 나의 생각을 충동질합니다. 나는 이 마지막 생애에서 지금과는 새로운 존재가 될 기회를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옛이야기를 읽고서 또 다른 깨달음을 구합니다. '변해야 할 것은 없다. 죽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내 가장 궁극적인 모습은 잠들어 있고, 그것을 깨우겠다는 믿음과 결단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니 나는 가장 살려내고 싶은 것들을 깨워줬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그러니까 내일 아침부터, 귀찮고 반복되는 어떤 사건에 더 용감하고 담대하게 응할 겁니다. 나는 내일 가족들과 잘 모르던 타인들도 좀 더 사랑을 품고 대할 수 있을 겁니다. 또 내일은 하루를 더 가치 있는 활동으로 채울 수 있겠죠. 기분 탓일까요? 그럴 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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