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약한 것의 신성에 대하여
옛날부터 종종 떠올리는 초월적 존재 혹은 신에 대한 형상이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다 그게 떠올랐어요.
일종의 만화적 상상 같은 신이라 여기며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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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강력했다.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으로 인간을 다스렸다.
신은 지혜로웠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바로잡으면서 인간을 교화했다.
신은 인내심이 넘쳤다. 인간의 악행이 이어져도 그들을 징벌하고 재촉하기보다는 시간을 들여 선으로 이끌었다.
어느 날 그 신이 사라졌다.
왜? 무엇 때문에?
모든 질문의 답은 인간의 몫이다.
큰 몸집, 큰 음성, 그리고 무거운 존재감으로 자신을 보여주던 신이 사라졌다.
인간은 신이 없이 살아가게 된 것일까?
정말로 신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이 세계는 진작에 붕괴했다.
그렇지는 않다.
아마도 작은 몸으로, 작은 소리로, 있는 듯 없는 듯한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인간이 파악하지 못하는 형태로 숨은 것이다.
왜 그는 작아져야 했나? 왜 그는 초라해져야 했나?
혹시 인간의 탐욕이 그를 실망시켰나? 인간의 악행이 그를 쫓아내 버렸나?
아니다. 그 스스로가 숨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면 사라질 이유가 없다.
대체 그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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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세에서 사라진 신의 존재를 종종 상상해 봤습니다.
세상일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신은 없다거나 죽었다고도 얘기합니다.
인과응보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듯한 혼란이 우리를 덮칩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죽은 적이 없습니다. 원래 죽을 수도 없습니다.
이 오래된 무의식적 질문에 대한 답이 어제 이 영화를 보다 살짝 스쳐 지나갔습니다.
내가 전체 내용 중 뽑은 가장 핵심적인 명대사.
작중에서는 큰 스님이란 분이 조언하는 말입니다.
부모에게 아이란 무엇인가?
부모에게 아이란 신이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한 신.
하지만 부모는 그 신을 간절히 섬기지.
너도 부모님께 그 섬김을 받고 여기까지 온 게야.
이 말을 듣고 이 질문이 떠오르고 동시에 나름의 답이 떠올랐어요.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은 강력한 신의 보호가 아니다.
인간은 오히려 더 약한 것을 사랑하고 보살필 수 있을 때 참된 인간의 모습이 된다.
우리 모두가 누구나 사랑하는 나약한 존재라면 바로 자기 자식이다.
이제야 사라진 신이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다.
신은 혹은 신성은 그 아기 속으로 들어갔다.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스스로를 무능하게 만들고 스스로 망각해 가면서.
이로써 모든 부모는 인간으로 태어나 더욱 인간이 될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고,
신 또한 그 섬김을 받음으로써 자신이 진정한 신이 될 수 있다.
신은 나보다 위대한 것이 아닌, 약하고 작고 무능한 것들에게 스며 있다.
나는 이 해답의 기쁨을 조심히 안고,
학원 마치고 돌아오는 나의 작은 신들 둘에게 격하고 반가운 마음을 전해줬습니다.
생각해 보니 자매 중 언니 역시 작은 신을 섬깁니다.
매일 툴툴대고 놀리기나 하는 약하고 어리석은 동생을 너무나 아끼고 보살펴주죠.
동생 역시 부모와 언니에게 삐딱할 뿐 더 작은 것들을 무척 사랑하죠.
작은 것도 섬길 줄 아는 우리 가족에게는 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마 지금보다 더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해 갈 겁니다.
* 영화는 엉성한 구성 때문에 실망해 기존 흥행은 실패한 것 같지만,
결말을 매듭짓는 서사만큼은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넷플릭스 상영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