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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게 '어쩔수가없다.' 뿐이라서 어쩔. (약스포)

경우의 수

by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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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 본다고 추후 영화 감상에 방해될 정도는 아닐 거예요.


그저 그렇단 의견이 많아 조금 주저하긴 했으나,

주말에 영화 한 편 보자는 아내의 제안에, 같이 볼 만한 작품이 결국 이 것뿐이네요.

체인쏘맨도 저에게는 재밌어 보이지만, 지난번 귀칼 볼 때도 아내는 너무 힘들어했는데, 이런 매니악한 건 더 별로겠죠?


'어쩔수가없다.' 영화 몰입력은 괜찮았습니다.

영화도 연극도 좋아하는 저에겐 연극적 느낌으로 만든 장면들이 다소 과해도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연극으로 각색하는 것도 아주 쉬워 보이는 작품.)

그리고 막장으로 가는 영화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결말이 제일 중요한데,

고전극에서 뻔하게 제시하는 권선징악이나 파멸도 아니고, 악행에 대한 뉘우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악인이 잘 되었지만 불안요인이 남아 미래를 궁금하게 하는 흔한 클리셰도 아닌,

오히려 모든 것이 다 잘 풀리는 내용이 조금 신선했습니다.

일부러 대사에 어쩔 수 없어! 같은 말들을 많이 넣었죠.

주연도 조연들도, 엑스트라들도 다 각자 입장에서 당한 일들의 해결에만 집중하면

그런 식으로 상황에 복종하고 해결하려고,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은 듭니다. 영화를 보는 중에는.

최종적 결말은 "이렇게 되어 버렸는데 네가 어쩔?" 하고 감독이 관객을 조롱하는 듯한 느낌도 드네요.


딱히 여운은 없지만,

감독이 기를 쓰고 감성적 요소를 막으면서 웃기고 덤덤한 연극으로 만드려고 한 것만은 인상적입니다.

마지막에 이 사건과 별로 관계없는 아이 교육까지 술술 풀리는 것을 보면서,

단순하게 생각하면 '될 놈 될',

복잡하게 생각하면 '인간은 상황의 변화에 그냥 빨리 순응하는 순서로 살아남는구나!' 하는 방향성을 통해,

이 모든 일들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 있음을 탄식하는 듯하네요.


감독의 의도와는 별개로, 나의 가치관을 투영해 이 세계관을 평해보자면,

사람들이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여전히 더 많은 '경우의 수'를 남겨두고서도 자신의 프레임에 갇혀서 그렇게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극단적인 생각들은 결국 상황에 따른 특정 반응을 너무 당연시한 결과가 아닐는지...

이 모진 세상에게서 왼 뺨을 맞았어도 내 마음만 충만하다면 오른뺨까지 들이댈 수 있습니다.

가족 중 누구나 욕할 만큼 막 나가는 형제, 부모, 자식이 있다고 해도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연이은 실패에도 나는 좌절보다 더 귀한 다른 배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이 삶을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어쩔 수 없다라며 실행하는 일들은 실상 책임감에 따른 선택이 아닌, 사건의 과정에서 자신을 빼놓으려는 무책임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서도 그런 얘기는 하네요.

종이와 관련된 일들에 얽매이지 말고 카페든 조경이든 다른 일에 도전해 보라고.

아내들이 한 가지 해결책에만 집착하는 남편들에게 하는 말이죠.

어쨌든 우리는 많은 경우의 수를 늘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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