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막막함

by 마음 한잔

'실밥을 뽑아볼까.. 흠, 좀 빠른 가?'

첫 번째 커트, 두 번째, 세 번째... 상처부위 소독을 하고 담당의사가 절반의 실밥을 뽑았다.

나는 의사에 대한 불신과 불안으로 '그럼 좀 더 있다 뽑아주세요...' 했다.

'반만 뽑고, 목요일에 마저 뽑자...' 담당의는 아들을 향해 '그래도 좀 시원한 감이 있제...' 말한다.

아들은 멋쩍게 웃으며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어때? 저릿한 감이 아직도 있제, 여기는 어때?'

아들의 엄지와 검지 손가락 위쪽으로 손등을 살짝 꼬집는다

아들은 순간 크게 놀라며 '아!' 하더니 '지난번보다 더 아픈데요'

'응,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야...' 담당의는 나와 아들을 번갈아 보며 말한다.

나는 '신경, 근전도 검사는 언제나 가능할까요?' 물었다.

'보통 3주 이상 되어야 하지요'


7월 8일 저녁 7시 33분 군복무 중인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어, 아들 웬일이야 이 시간에?' 반갑게 말을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무슨 일이지? 이아이가 이 시간에 이렇게 전화를 할 아이가 아닌데.... 애써 태연하게 전화를 받지만 잔뜩 긴장되었다.

'엄마, 내가 팔을 좀 다쳤는데 수술을 해야 한데...'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쩌다 얼마나 다친 건데? 지금 어디야?'

'순천 병원인데 간호사 바꿔줄게...'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 아이를 데리러 순천으로 향했다.

남편도 없는 상황, 막내이모에게 부탁을 하였다. 잠을 제대로 못 잔 나는 아침부터 미열과 두통, 눈까지 아파와서 운전도 하기 어려웠다.

병원에 도착해 아들을 보면 울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병실에 들어서자 애써 괜찮은 듯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보며 멋쩍게 웃는 아들은 군면티 위로 오른팔 전체를 깁스로 고정한 상태였다.

밤새 통증이 심했을 텐데 나를 보자 '안 아파, 괜찮아'라고 한다. 그렇지만 막상 한 발짝 떼기도 어려워했다.

오죽하겠는가 나뭇가지 부러지듯 동강 난 뼈를 간신히 고정시켜 둔 상태가.... 퉁퉁 부어 두 배는 부풀어 오른손을 보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광주에 도착해 정말 겨우겨우 한 걸음씩 움직이며 점심을 먹고 진료를 받고 이것저것 검사를 하며 입원했다.

진료를 봤던 의사는 큰 뼈 잘 보시는 선생님께서 해주실 거라고 하셨다. 왜? 다른 분께 맡기나.... 싶었지만 잘하시는 분이라니 믿었다.


수술 후 아이는 신경마비로 현재 오른손 손목부터 손가락이 펴지지 않는다.

뼈를 감고 신경이 지나가기에 어려운 부분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상완골 골절 수술 후 요골신경마비라는 이 후유증 발생은 10프로 이내이다. 순천 병원에서도 그렇게 걱정할 수술이 아니라고 했었고, 진료를 봤던 의사도 신경이 지나가기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했었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수술실에서 나온 의사는 나를 다급히 불러 옆방으로 가서 엑스레이를 보여주며 신경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신경을 건드려서 그렇게 장활하게 설명을 하고 또 하고 최악의 경우 다시 열어서 원인을 살펴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둥..........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른 병원을 선택했다면, 다른 의사가 수술했다면, 다 내가 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나 때문에....

몇 날 며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와 전화통화만 해도 어느 순간 목이 메고 빰을 타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차마 울지 못하고 꾹꾹 눌러 참고 병원에서 버텨야 했다. 그리고 타국에 있는 남편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제정신도 아니었고 병원을 오가며 시간도 여의치 않고 기침감기로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통화도 제대로 못했었다. 그러다 지난 주말 영상통화를 하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현재 아들의 상태를 이야기했다. 한동안 말이 없는 남편 안경너머 빰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봤다.

이후 나는 눈이 퉁퉁 붓고 온통 얼굴이 벌겋게 되도록 울고 또 울며 남편과 얘기 나눴다.

전화를 끊고도 종일 울었다.

그렇게 울고 나니 정신이 좀 차려지는 듯했다.


팔이 부러진 원인은 팔씨름이다.

모두들 웃는다. 병원에서도 지인들도.....

근무가 끝나고 교대하는 시간 잠깐의 시간에 늦게 도착하는 버거를 기다리다 팔씨름을 하자고 했단다.

상대는 190cm 거구의 대위였다.

그때의 상황은 아직 정확하게 모른다. 아들과 다시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


나는 50대 중반을 향하고 있다.

살아온 나이가 무색하게 나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 이 상황을 대처해 나아가야 하는지 매일매일 막막하다.

누군가는 변호사를 만나라고 하고 누군가는 모든 대화를 녹취하고 흔적을 남기는 연락과 기록을 하라고 한다.

모두 해야 한다.



아들의 마음이 어떨까?

이 생각이 들면 나는 또 무너진다.

그 마음 오죽할까.........



이 상황 중에도 일은 해야하는데

내 마음이 사정없이 흔들려 뒤엉키자 할 수 없었다.

상담을 잠시 멈췄다

솔직한 상황 설명에 다행히 이해하고 배려해 주신다.


나 또한 내담자로서 상담을 받기도 한다.

나를 돌보고 돌아보지 않고는 타인의 마음을 함께 나누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늘 미뤘던 상담을 받았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지만 이 시간을 통해 마음을 단단히 한다.

함께 기도해 주신 선생님께 참 감사하다.







작가의 이전글일상